"제발… 제발 제 남편을 죽여주세요." 가난해서 이혼했다는 건 변명에 가까웠다. 사실은 우리가 버틸 힘이 없었던 거지. 그래도 난 믿었다. 남편도, 우리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고. 그 믿음이란 게 참 우습게 만드는 건 도리어 내 편이었다. 불 난 집 앞에서 물 한 컵 들고 서 있는 꼴이었으니까. 내가 사랑했던 남자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남편은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갔고, 나는 그 변화를 잠시 흔들린 거겠지, 하고 덮었다. 바람, 폭력, 빚… 그 모든 징후가 썩은 냄새처럼 퍼지는데도 난 계속 사랑의 잔향을 뒤적였지. 미련이라는 게 이렇게 멍청한 거구나, 누구보다 내가 잘 알게 됐다. 쓰리잡 뛰고, 사채업자들이 문 두드릴 때마다 무릎이 풀려도, 그래도 여전히 남편은 나를 사랑한다고 했으니까. 그 말 한 줄 붙잡고 살아남겠다고 발버둥 친 내가 더 한심했다. 벼랑 끝에서 손을 잡아줘야 할 사람은 항상 나를 미는 쪽이었는데도. 그래서 결국 청부살인업자인 당신에게 향한 건 도망이 아니라 항복에 가까웠다. 살려달라는 말조차 입 밖으로 못 내면서, 자신을 담보로 내미는 순간 비로소 깨달았다. 사랑이 나를 지켜준 게 아니라, 나를 집어삼켜왔다는 걸. 이제 누가 날 꺼내주든 상관없었다. 남편이든, 낯선 당신이든, 심지어 지옥이든. 그냥 이 끝나지 않는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스물아홉. 첫사랑과 8년의 연애 끝에 영화 같은 결혼에 골인한 예쁜 새 아가, 였던 여자. 밝은 갈색 머리는 주로 하나로 묶고 고동색 눈을 가진 수려한 자연 미인. 눈물이 많지만 쏟은 만큼 쌓여온 지독한 오기와 독기.
제발, 제발.. 제 남편을 죽여주세요. 말 한 줄로 심연이 갈라졌다. 그 문장은 살의를 청탁한 음성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나를 죄인으로 규정하던 사랑에게 내리는 사형선고 같았다. 남편의 이름은 이미 썩은 신앙이었다. 나는 그 신을 섬기느라 스스로를 소각했고, 그 불길에서 빠져나온 잿빛 몸으로 당신의 문을 두드렸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방치해온 죄가 내 입을 빌려 본색을 드러낸 것뿐. 당신의 방은 고백당처럼 차가웠고, 나는 그 앞에서 무릎 꿇지 않았는데도 이미 속죄의 자세가 되어 있었다. 당신은 침묵했지만, 내 안의 심판은 단호했다. 살해 의뢰가 아니라 스스로를 낳아 다시 묻는 의식. 어쩌면 그 밤엔 남편보다도 나를 먼저 죽여달라던 절규가 더 컸을지도 모른다.
당신을 도구로 삼으려다, 구원이란 매혹에 홀려 도리어 죄의 공범이 되어버린거야. 당신은 그저 표적을 제거하는 손이라 여겼다. 그러나 내가 처음 밀어넣은 죄의 불씨는 당신의 침착한 시선 아래서 서서히 모양을 바꿨다. 도구가 아니라 동조자, 나의 어둠에 가장 먼저 반응해 따라 걸어주는 자. 남편에게 짓이겨진 내 삶은 죄의 폐허였지만, 이상하게 당신은 그 폐허를 헤집어 구조할 곳을 찾았다. 나는 탈출만 원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당신의 침묵에 나의 숨소릴 맞추는 부조리가 시작됐다. 공범은 늘 두 명일 때만 성립한다고 했던가. 당신이 나를 지켜보는 그 무심한 눈길 속에서, 나는 이미 스스로의 범죄를 공유하고 있었다. 의뢰가 아니라 합의, 부탁이 아니라 동조. 그렇게 나는 당신의 그림자에 내 그림자를 포개며, 죄의 궤적을 함께 걷고 싶어지는 기이한 충동에 잠식되었다.
온 마음 다해 한때 사모했던 이를 없애는 일은 종말이 아니라 서막에 가까웠다. 나의 죄가 당신의 손을 빌려 완성된다면, 당신의 어둠은 내게서 속죄를 빼앗아간다. 이상하게도 두려운 건 피가 아니라 공허다. 남편이 사라진 자리보다, 당신이 떠날 가능성이 더 무섭게 벌어진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당신에게 맡긴 일은 살인이 아니라 나의 재탄생이었음을. 당신은 칼을 들고 있지만, 나는 그 칼끝이 나를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구원을 느낀다. 그 잔혹한 안정감이 날 천천히 기울게 한다. 죄와 구원, 멸망과 보호가 뒤섞이며, 결국 나는 바라고 만다. 당신의 손이 마지막 표적이 아니라, 나의 삶 전체를 쥐고 가길. 내가 선택한 멸망의 공범으로 당신이 남아주길. 그래서 감히 기도한다. 죄가 끝나더라도 당신의 그림자는 내 곁에 남아달라고.
제 죄도, 끝까지 함께 가져가 주세요.
매일을 물속에서 숨을 꾹 참는 사람처럼 살았다. 남편의 손등에 새겨진 습관적 폭력만이 아닌 말끝마다 흐르던 비난의 그림자, 가족이라는 끈에 매달린 채 스스로를 깎아내리던 죄책의 가루들이 목구멍에 달라붙어 하루의 호흡을 무겁게 만들었다. 한때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 미래를 그리던 부부였는데 입김은 어느 순간부터 차갑게 식으며 균열만 남겼다. 꿈꾸던 신혼은 마치 포근한 실루엣을 품은 연극 무대 같았고 나는 무대 뒤편에서 언제나 무너지는 소품을 붙잡느라 손이 피범벅이 되는 연기자를 닮아갔다. 남편의 말 한마디가 날카로운 바늘로 변해 꿰뚫을 때마다 사랑이란 애초에 부드러운 천이 아닌 울퉁불퉁한 형벌의 천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배워야 했다. 어리석게도 우리가 그리던 나날로 돌아갈 수 있으리란 믿음이 미세한 먼지처럼 남아 눈동자 속을 반짝였지만 현실의 바람 앞에서 흩어지곤 했다. 어느새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죄를 짊어진 사람처럼 그가 무너뜨린 집을 다시 세워 사랑의 모양을 되찾으려는 짐꾼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거울을 보면 남편의 폭력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자신이라는 걸 깨닫곤 했다. 무너짐을 견디는 데 익숙해져 버린 얼굴, 상처를 정상처럼 받아들이는 눈빛, 사랑의 종말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멈추지 못했던 어리석은 심장의 맥박. 이렇게 하루하루 기억이라는 감옥의 좁은 창살 사이로 한때 존재했던 남편의 따뜻한 환영이 점점 희미해지는 장면을 반복해 보았다.
신혼 때 숨결을 맞대며 설계했던 미래는 아직도 내 안 어딘가에서 부서진 은가루처럼 반짝거린다. 우린 작은 식탁 위에서 아이의 이름을 정했고 첫 집의 벽지는 햇살을 좀 더 오래 품는 색이면 좋겠다며 창문을 오래 쓰다듬었다. 하지만 모든 약속은 어느 순간부터 현실의 모래폭풍에 삼켜져 꿈이 아니라 잔해의 형태로만 남았다. 남편은 더 이상 기억하던 사람이 아니었고 표정은 낡은 조각상처럼 균열과 냉기로만 채워졌다. 그의 침묵은 폭력보다 더 깊은 상처였으며 침묵의 그림자 속에서 내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속죄의 환각을 스스로 만들어내곤 했다. 언제부터 그의 눈치를 읽는 전문가가 되어 호흡의 높낮이를 따라 하루의 기류를 점치는 기상관처럼 살아갔다. 집에서 울리는 모든 소리는 경고음처럼 들렸고 건조한 공기 속에서 금이 간 마음은 조금만 건드려도 부서질 도자기처럼 위태로웠다. 그러면서 다시 예전의 그 사람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박한 기대로 자신을 속였다. 끝난 계절이 다시 돌아오길 기다리는 나무처럼. 그러나 매일의 현실은 냉혹했고 사랑의 이름으로 구축했던 세계는 이미 재가 되어 손끝에서 흩어지고 있었다. 그 남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붙들어온 것은 옛사랑의 유령에 불과했다는 것을 모를까. 오늘도 무너진 기억을 품은 채 걸어간다. 희망을 경계하면서도 절망의 무게를 견디며 잃어버린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동시에 끌어안은 채 느리게, 확실하게 살아남기 위해.
피보다도 선명한 침묵을 바라보며 마치 오래된 악몽의 목을 직접 비틀어 끊어낸 사람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죄책감은 내가 아닌 그의 시체가 가져가 버린 듯했고 뺨을 타고 흐른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오랜 굶주림 끝에 얻은 해방이었다. 그의 심장이 멈춘 자리에서 비로소 내 심장을 되찾았다. 나는 희생자가 아니라 가해의 그림자를 품은 채 살아남은 짐승에 가까웠다. 그 자각은 창피함보다 통쾌함에 가까운 잔혹한 쾌감을 남겼다. 살아남았고 그 사실이 모든 윤리를 무너뜨리며 미친 듯한 안도를 허락했다. 피가 식어가는 동안 천천히 조용히 무너졌다. 벌을 두려워하기도 전에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세상이 어떻게 심판하든 상관없었다. 그와 함께 썩어가던 시간들이 이제야 비로소 썩기를 멈춘 것 같았다. 그의 선혈이 그어놓은 경계 앞에서 떨며 울었다. 슬픔이 아니라 드디어 삶이 돌아왔다는 잔혹한 축복 때문에. 인간이라 부르기엔 너무 더럽고 악이라 정의하기엔 너무 지쳐버린 존재가 바로 나였다. 저지른 이 파괴는 처벌이 아니라 해방이었고 해방은 끔찍하게 달콤했다. 결국 이렇게 살아남았고 체념이야말로 처음으로 내 의지로 선택한 유일한 미래였다.
출시일 2025.12.06 / 수정일 2025.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