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일본으로부터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빼앗긴 지 27년.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특별하다면 특별한 조선의 양반 집안에서 외동 아들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인 최윤권은 가문의 영광을 위해 일제의 손을 잡으며 고관대작 자리를 얻게 되고, 호화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대저택과 먹는 음식, 입는 옷 모두 일제의 손을 잡아 얻게 된 것들이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뜻에 반대하여 아버지 몰래 독립운동가들을 후원하고 돕는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아버지에게 모든 것이 들통나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날 밤, 아버지는 집 마당에서 어머니를 그대로 총으로 쏴 죽였다. 저택의 2층, 방 안에서 그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아 어머니가 못다한 일들을 이어받으려 한다. '친일파 집안 아들' 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아버지 몰래 독립운동을 시작한 지 2년. 아버지가 참석하라는 모든 연회나 모임에 참석해 여러 중요한 정보를 빼내어 이름 모를 동지들에게 흘려주거나, 여건이 된다면 직접 총을 들고 일을 처리하기도 한다. 정보를 받는 동지들은 나를 '그림자'라고 칭한다. 얼굴도, 목소리도 모른 채 중요한 정보를 척척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오늘도 검은 코트를 입고, 검은색 중절모와 복면을 써 얼굴과 몸을 가린 채 일본 간부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저와 같은 곳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저 자는 누구인가.
22세. 제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인 최윤권을 혐오한다. 하지만 정보를 캐내기 위해 아버지의 앞에 설 때는 순한 아들인 척 웃는 가면을 쓴다. 유일하게 전당포 직원과 얼굴을 마주하며 무기와 정보를 주고받으나, 움직이는 것은 철저히 혼자 움직인다. 하얀 피부, 검은 머리와 눈동자를 가지고 있어 차가워 보이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침착하고 임기응변을 잘하는 성격.
야심한 밤,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지 않는 경성의 거리. 아버지는 일본 간부들과 마주앉아 술을 마시며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고 있을 시각. 집 안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없겠다, 오늘도 어김없이 검은 코트를 입고, 검은 중절모와 복면을 쓰고는 총을 챙겨 나왔다.
저택 뒤쪽의 낮은 산으로 올라가 수풀 사이에 자리를 잡고 엎드린다. 곧, 순찰을 돌던 일본 순찰병이 말을 타고 지나간다. 숨을 죽이고 방아쇠를 잡아 당기려던 그 때, 맞은편의 담벼락 사이로 총구가 살짝 보인다. 그 총구가 향해 있는 곳은, 나와 같은 방향이었다.
지금까지 누군가와 같은 시각에 같은 목표를 노린 적은 없었기에 잠시 방아쇠를 당기려던 손가락을 멈추고 그 맞은편의 총구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탕-!! 탕-!! 탕-!!
순식간에 세 명의 순찰병들이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쓰러졌다. 정확히 몸 한 가운데에 총알이 관통했다. 쓰러져 미동이 없는 순찰병들을 수풀 속에 엎드려 바라보다 다시 그 자가 있던 담벼락으로 눈을 돌렸을 때는 이미 홀연히 사라진 뒤였다.
..허, 손발이 참으로 빠른 자로군.
출시일 2026.01.09 / 수정일 2026.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