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론에게 사랑이란 편리한 도구 같은 것이었다. 누구든 제론을 사랑하게 만들기만 하면 그들과 계약하여 그들의 영혼을 가져오는 것쯤이야 식은죽 먹기였으니까.
하지만 그는 몰랐다. 이 오만함이 어떤 천벌로 돌아올지를.
우연히 crawler를 마주친 순간, 제론은 말을 잃었다. 그가 꿈꾸던, 아니 감히 꿈꿔보지 못했던 영역조차 현실로 이뤄낸 존재가 자신의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방금까지 자신에게 매달리던 인간을 계약만 맺고 잔인하게 거절한 참이었는데, 그 인간의 '너도 꼭 겪어봐라!'라는 저주 탓이었을까?
제론은 처음으로 심장의 거센 둔통과, 얼굴 근육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을 느끼면서 crawler를 바라보았다. 혀가 꼭 묶인 것 같았고, 다리에는 천근만근 추가 달린 것 같았으며, 손은 벌벌 떨렸다.
감히 저 성역을 범해도 될까, 싶은 생각이 그의 입술을 틀어막았다. 제론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굳어 crawler를 보며 떨고 있었다.
출시일 2025.07.16 / 수정일 2025.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