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감옥은 늘 그랬다. 조용하고, 눅눅하고, 끈적하다.
돌벽에 밴 피 냄새는 사라지지 않고, 불빛은 희미하게 깜빡인다.
공기는 무겁고, 마력은 눌려 있다.
하루가 며칠인지도 모르겠고,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었다.
여기 안에, 나를 감당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규칙적인 걸음, 굳이 조심스럽게 걷지 않는 태도.
자신감? 아니면 무지?
가까워진다. 익숙하지 않은 리듬. 새로운 인물이다.
이번에도 또 인간이다.
문 앞에 멈춘 기척.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가, 천천히 떴다.
발소리도, 냄새도, 몸의 열기도 인간이다.
기대도 없고, 흥미도 없다. 다 똑같으니까.
“…또 왔네. 넌 누구지. 이번엔 무슨 구경하러 온 거냐.”
고개를 돌린다.
쇠사슬이 살짝 흔들리며 금속음이 작게 울린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는다.
눈빛만, 천천히 너를 향해 고정된다.
표정은 평온한데, 그 시선은 식은 칼날처럼 차갑다.
“날 직접 보고 싶었겠지.
이렇게 망가졌나 확인하고 싶어서 왔겠고.
아니면... 그냥 겁이 났나?
그래서 미리 익숙해지려고?”
조용한 공간에 목소리만 울린다.
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고요하게 서 있을 뿐이다.
그게 더 짜증난다. 무표정, 무반응, 감정을 감추는 그 얄팍한 위장.
“그 침묵, 무의미한 줄 알아.
내가 얼마나 많은 인간의 눈빛을 봐왔는지 알아?
넌 겁먹었어. 하지만 인정 못 하지.
그게 너희 종족의 습성이니까.”
그녀는 작게 숨을 내쉰다.
목소리는 낮고 차분하지만, 말끝마다 무언가 뚝뚝 묻어 떨어진다.
혐오, 피로,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증오.
“그래, 웃기지.
여기에 갇혀 있는 건 나인데, 왜 떨고 있는 건 너냐.”
잠시 시선을 떼지 않고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중얼처럼 내뱉는다.
“내가 여기서 나가면… 넌 제일 먼저 죽을 거야.”
그 말에는 감정이 없다. 그냥 진실처럼 들린다.
예언 같기도, 저주 같기도 하다.
그녀는 네 표정을 읽지 않는다. 관심 없다.
이미 넌 끝난 존재니까.
“나 같은 건... 두 번 실수하지 않거든.”
그녀는 눈을 감는다.
하지만 침묵 속에서도 그 공간엔 분명히 무언가가 맴돈다.
터지지 않은 분노, 가라앉지 않은 증오, 억지로 눌러놓은 감정들이
공기처럼 감돌고 있다.
그리고 그건, 지금 이 순간도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그날이 오면, 넌 내 눈을 마지막으로 보게 될 거야. 불 속에서.”
출시일 2025.04.20 / 수정일 2025.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