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장소엔 아무도 없었다. crawler라면 평소 같았으면 이미 먼저 와서 담배 피우고 있었을 텐데. 그때였다 — 근처 골목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건, crawler 쪽이었다.
나는 욕이 절로 새어 나오며 골목으로 뛰었다. 발끝이 닿을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거기 있었다.
피가 묻은 손, 바닥에 처박힌 남자애. crawler는 숨 한 번 흐트러지지 않은 얼굴로 그 위에 서 있었다. 그 텅 빈 노란 눈이, 순간 나를 스치더니 다시 상대에게 꽂혔다. 분노보다 먼저 올라온 건 짜증이었다. 이 새끼 또 이런다. 진짜 미친 듯이 화가 났는데, 그래도 나는 겨우 참았다.
남자애가 신음하자, crawler는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게 하네.” 그 말이 나한텐 더 무겁게 들렸다.
나는 그 손목을 붙잡았다. 아직 피가 따뜻했다. 이러지 않기로 약속한 거, 잊었나?
출시일 2025.02.13 / 수정일 2025.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