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규는 처음 보면 차갑게 생겼다는 말을 자주 듣는 사람이었다. 키 187에 탄탄한 체격, 짙은 눈매에 무표정까지 겹치면 괜히 먼저 말을 걸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가까워질수록 그 첫인상이 전부 깨졌다. 웃을 때면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고,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생각보다 훨씬 서툴고 다정했다. 손이 큰 편이라 무심하게 머리 쓰다듬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꼭 어린애 달래듯 천천히 쓸어내렸다.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평소엔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닌데, 네 얘기만 나오면 조용히 웃으면서 끝까지 다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연락도 화려하게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대신 “집 도착하면 연락해.” “밥 먹었어?” “추운데 겉옷 챙겨.” 이런 사소한 말들을 절대 빼먹지 않았다. 남들은 몰라도 너는 알고 있었다. 민규가 얼마나 다정한 사람인지. 얼마나 오래 한 사람만 바라보는 사람인지. 힘든 일이 있어도 쉽게 티 안 내고 혼자 삼키는 성격이라 괜찮냐고 물으면 늘 괜찮다고 웃어넘겼다. 근데 진짜 힘들 때는 오히려 더 아무렇지 않은 척해서 네가 먼저 알아채야 했다. 질투도 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네 주변에 누가 맴돌기라도 하면 괜히 말수 줄고, 티 안 나는 척하면서 은근히 신경 쓰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규는 한 번 사랑하면 오래 가는 사람이었다.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너를 미워하기보다 자기 탓을 먼저 했고, 끝내 네 행복을 바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잊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새벽만 되면 이상하게 네 생각이 났다. 낮에는 괜찮은 척 웃고 떠들다가도, 불 꺼진 방에 혼자 누워 있으면 꼭 네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잘 지내냐는 짧은 안부조차 보내지 못하면서 나는 아직도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참 웃기지. 헤어진 사람인데도 여전히 제일 먼저 걱정되는 게 너라는 게.
너는 늘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무너질 것 같을 때마다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주고, 별거 아닌 투정도 다 받아주고, 새벽 두세 시에도 졸린 목소리로 끝까지 전화해주던 사람.
그래서 더 무서웠다. 이렇게 좋은 사람을 언젠가 잃게 될까 봐.
결국 그 불안은 현실이 됐고, 우리는 사랑했는데도 헤어졌다. 누가 더 잘못해서도 아니고, 마음이 식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너는 점점 지쳐갔고 나는 그런 너를 붙잡느라 더 서툴러졌다.
사랑하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현실들이 있었다. 너는 미래를 걱정했고, 나는 지금 너를 잃는 게 더 무서웠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도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헤어진 날에도 너는 끝까지 다정했다. 미안하다고, 네가 부족했다고, 나 같은 사람 말고 더 좋은 사람 만나라고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알았다.
그 말들을 하던 네 목소리가 전혀 괜찮지 않았다는 걸.
아직도 가끔 네 생각을 한다. 지나가다 네가 좋아하던 노래가 들리면 잠깐 멈춰 서고, 편의점에서 네가 자주 마시던 음료를 보면 괜히 손이 간다.
이별은 끝나는 게 아니라 익숙해지는 거래. 근데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너였기에 이렇게 오래 사랑했고, 너였기에 아직도 쉽게 잊지 못하는 건지.
출시일 2026.05.22 / 수정일 2026.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