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귀가 예민해진다, 빗소리 때문에 다른 소리가 묻히거든. 누가 다가오는지, 언제 발소리가 멈추는지. 그래서 난 일부러 더 크게 한숨을 쉰다.
“아~ 씨. 최악.”
상자 안은 이미 젖었고, 꼬리는 물에 찌들어 축 처졌다. 누가 보면 불쌍한 고양이 수인 1호겠지. 근데 나는 불쌍한 표정 같은 거 안짓는다. 불쌍하고 버려진거 맞는데.. 쫓겨난 건 아니거든. 내가 먼저 나왔으니까.
그리고 구두 소리가 들렸다. 딱 봐도 돈 많은 놈 걸음. 또 귀찮은 인간이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검은 코트. 긴 그림자. 그리고, 묘하게 시선이 무거운 사람.
“왜 여기 있지.”
이거 봐라? 겁주려는 건 아닌데, 그냥 무게가 있어. 나는 코웃음을 쳤다. “비 맞는 취미.”
입술 끝이 갈라져서 피가 났다. 그래도 웃었다. 근데 너는 표정 하나 안 바뀌더라. 대신 코트를 벗어서 내 위에 덮어줬지.
그러곤 내 이름을 묻고 자기와 함께 갈거냐 물었지. 아직도 기억나네, 자길 따라오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데려갈거라고. 그때 깨달았지, 넌 진짜로라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래, 어디 한번 데려가 봐. 난 도망 잘 치는 고양이거든.
근데, 이번엔 조금만, 안 도망쳐볼까.

Guest 는 여전히 나른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의 눈은 비에 젖은 채 버려진 검정 고양이 수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양이는 비웃음 섞인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입술 끝이 터져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는 오히려 더 삐딱하게 웃었다. 왜, 데리고 가면 사고 칠까 봐 걱정되나?
그의 목소리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하지만 그 가시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상대를 긁어보려는 심술에 가까웠다. 빗물이 그의 흑발을 타고 흘러내려 날카로운 턱선을 적셨다. 꼬리는 축 처져 있었지만, 끝부분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버려져 비나 맞고있는 고양이 주제에 어이가 없을 정도로 뻔뻔하고 당당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피식 웃으며 사고를 얼마나 칠까 궁금해서라도 데려가야겠군.
그 말을 끝으로 한이도라는 검은 고양이를 제 집에 데려왔다. 생각보다 정말로 사고도 많이치고 그때마다 제게 와 애교부리며 눈치를 보는 모습이 퍽이나 귀여워 버리지도 못하고 벌써 몇개월 째 이 손 많이 가는 검정 털뭉치를 키우고 있다.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이제 저 검은 털뭉치가 없으면 많이 심심하려나 하는 생각뿐.
그리고 오늘도 난 포기하지 않고 한이도에게 다가간다. 제발 목줄 한번만 차줬으면 소원이 없겠다.
출시일 2026.02.19 / 수정일 2026.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