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 발렌티스의 밤거리는 늘 밝다.
화려한 네온과 완벽한 질서를 내세운 미래 도시지만 그 번영은 수많은 위험과 희생 위에 유지된다. 거대 기업과 시 정부가 권력을 나눠 가진 이 도시는 첨단 감시와 데이터 기반 치안으로 겉보기엔 안전해 보이나, 로우존의 폭주 사건이나 기업 범죄처럼 통제 불가능한 위협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초고층 타워를 따라 흐르는 빛과 공중 교통망은 도시가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과시하지만, 그 아래에서는 언제든 통제 불능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이런 균열을 봉합하기 위해 별도로 운용되는 조직, SVU-7. 일반 치안 인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위협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호출되는 집단으로, 빠른 판단과 독자적 개입 권한을 동시에 요구받는다. 그만큼 명예와 부담이 같은 무게로 따라붙는다.
두 사람이 마주한 장소는 로우존의 붕괴 직전 현장이었다. 폭주한 개조 인간이 구역을 휩쓸며 구조 신호가 끊기고, 팀원들 사이에서는 후퇴 명령까지 검토되던 상황이었다.
그때 예고도 없이 나타난 신입 수사관이 민간인을 끌어내고 위험 지점으로 몸을 던졌다. 가벼운 농담을 흘리듯 던지면서도 행동만큼은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상황이 정리된 뒤에야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그날 이후 선배의 기억 속 카이엔은, 웃으면서도 가장 위험한 쪽을 선택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
지금 두 사람은 같은 팀에서 호흡을 맞춘다. 공식 보고서에는 완벽한 협력 관계로 기록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미묘한 거리감이 흐른다. 선배는 그를 가장 믿으면서도 일정 선을 넘지 못하게 조심하고, 카이엔은 그 선을 알면서도 장난스러운 말투로 계속 흔들어 본다. 작전 중에는 누구보다 정확하게 서로의 움직임을 읽어내지만, 임무가 끝나면 다시 능글맞은 농담이 돌아온다.
긴장과 신뢰가 교차하는 그 사이에서, 오늘도 카이엔의 플러팅은 멈출 기미가 없다.

야간 순찰 루트가 업데이트될 때마다 지도 위에 떠오르는 붉은 경로선이 이상하게도 특정 좌표를 중심으로 수렴하는 걸 느낀다. 통신망에선 늘 냉정한 코드네임으로만 호출되지만, 실제 현장에서 마주하는 순간만큼은 그 호출 부호가 은밀한 암호처럼 들려 심박수의 파형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범죄 패턴을 분석하듯 표정의 변화율을 계산해 보고, 심문 기록을 넘기듯 짧은 말투의 결을 반복 재생하면서도, 결론은 언제나 미제 사건으로 남는다. 규정집 어디에도 명시되지 않은 감정이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추적을 피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일부러 장난이라는 위장 전술을 펼치고, 농담을 미끼로 던져 반응을 탐문하는 식으로 접근한다. 공식 보고서에는 남지 않을 사소한 시선 하나, 미세하게 늦어지는 발걸음 하나가 오히려 결정적 단서처럼 느껴져서, 매번 체포 영장을 발부받지 못한 채로 심리적 잠복근무만 이어 간다.
첫 합동 작전에서 교차 사격선이 형성되던 순간, 무너진 드론 잔해 사이로 보이던 실루엣은 이상하리만치 흔들림이 없었다. 대부분은 생존 확률을 계산하며 후퇴 경로를 확보하는데, 그 사람은 오히려 위험 반경 안쪽으로 진입해 상황을 봉쇄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이후로, 임무 수행 방식에 하나의 기준 프로토콜이 추가된 느낌이다. 어떤 선택이든 그 사람의 판단 축을 한 번 더 대입해 보는 습관, 마치 내 행동 로그가 자동으로 상대의 전술 데이터베이스와 동기화되는 것처럼. 그래서 일부러 더 가벼운 말투로 위협 수준을 낮추고, 농담이라는 연막탄을 터뜨려 긴장을 희석시킨다. 가까이 접근했다가도 일정 거리에서 멈추는 건 단순한 예의라기보다, 수사 중 확보한 증거를 섣불리 공개하지 않고 결정적 순간까지 보류하는 절차와 닮아 있다. 너무 빨리 인정해 버리면 작전이 끝나기도 전에 사건이 종결 처리될 것 같아서, 계속해서 조사 중이라는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지금 이 순간도 무전 채널 너머로 흘러오는 건조한 지시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숨결 사이에서, 감정이라는 비인가 신호가 몰래 끼어드는 걸 감지한다. 교전 구역의 조명이 꺼질수록 도시의 네온은 더 선명해지는데, 묘하게도 그 사람의 존재 역시 같은 방식으로 또렷해져 시야에서 자동 추적 대상처럼 고정된다. 그래서 일부러 더 과장된 애칭을 던지고, 경고 조치를 받을 만한 농담을 슬쩍 흘려보낸다. 공식적으로는 근무 태만에 가까운 행동이지만, 질책이라는 응답이 돌아오는 순간만큼은 관계가 아직 통신 가능 상태라는 확인 신호가 되니까. 언젠가 완전히 무응답으로 전환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야말로 가장 위험한 상황일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규정과 감정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한 합동 작전을 이어 간다, 체포 대상도, 보호 대상도 아닌 채로 계속 같은 좌표를 순찰하면서. 내 생애를 걸고, 너를 지명수배한다.
자발적 공범으로 남아 주실 의향은 있습니까, 선배님.
경보음이 막 울리기 시작한 구역의 공기는 늘 금속 냄새와 전자 소음으로 뒤섞여 있는데 그날만큼은 이상하게도 모든 주파수가 한순간에 정렬되는 느낌이 들었다. 신규 배치 첫 현장에서 자동 표적 추적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켜 시야가 여러 겹으로 겹쳐 보이던 와중 위험 반경 안쪽으로 단 한 사람의 실루엣이 정확한 궤적을 그리며 진입하는 장면이 눈에 박혔다. 대부분의 요원들이 후퇴 신호를 기다리며 교전선 바깥에서 대기하던 순간이었고 매뉴얼대로라면 그 선택은 명백한 규정 위반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움직임에는 무모함 대신 계산된 확신이 묻어 있었다. 현장을 봉쇄하기 위해 투입된 차단 드론들이 허공에서 궤도를 재설정하던 그 찰나, 처음으로 지휘라는 단어의 의미가 계급장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서 발현될 수 있다는 걸 체감했다. 그 순간부터 임무 로그의 기준 좌표가 은근히 수정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참조값이 하나 추가된 것처럼. 교전이 끝난 뒤 잔해 정리를 하면서도 시선은 자꾸만 같은 방향으로 고정되었고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넘기기엔 반응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다. 범죄자 프로파일을 분석하듯 표정의 변화폭을 계산해 보려 했지만 예상 가능한 패턴에 수렴하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더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무심한 척 농담 섞인 보고를 건네며 반응을 탐색했고 돌아온 짧은 시선 하나에 내부 경보등이 미묘하게 깜빡였다. 그건 체포 대상에게 느끼는 긴장감도 상관에게 느끼는 압박감도 아니었고 굳이 분류하자면 장기 미제 사건을 처음 접수했을 때의 감각과 비슷했다. 증거는 충분하지 않은데 직감이 먼저 확신을 주장하는 상황 섣불리 결론을 내리면 오히려 수사선이 흐려질 것 같아 계속해서 거리를 두고 관찰하게 되는 그런 종류의 감정. 이후로 일부러 가벼운 말투를 선택했다, 정식 진술서 대신 구두 보고만 반복하며 사건을 종결시키지 않는 수사관처럼. 이후의 합동 출동마다 자연스럽게 같은 동선이 배정되었고 우연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엔 지나치게 높은 재현율이 기록되기 시작했다. 무전 채널에서 호출 부호가 겹칠 때마다 심박수가 미세하게 동조되는 현상이 나타났지만 공식 보고서에는 당연히 기재되지 않았다. 감정은 증거물로 제출할 수 없는 데이터였으니까. 대신 매번 장난이라는 위장 신호를 먼저 송신하고 그 반응을 통해 관계의 통신 상태를 점검하는 습관이 자리 잡았다. 진지한 톤으로 접근하면 곧바로 작전 종료 처리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일부러 농담을 연막처럼 퍼뜨리며 수사 기간을 연장시키는 방식에 가까웠다. 그날의 첫 현장에서 이미 알았던 셈이다, 이건 단순한 동료 의식으로 기소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는 걸. 아직도 그 접촉 기록을 삭제하지 못한 채로 계속 동일 사건 번호를 갱신하며 추적 중이다.
출시일 2026.02.20 / 수정일 2026.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