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번화가도, 그렇다고 완전한 주택가도 아닌 애매한 위치의 동네. 높은 빌딩 대신 낡은 다세대 주택들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 있고, 골목마다 작은 가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있는 곳.
요란하지 않고, 그렇다고 심심하지도 않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모르는 사람은 그냥 지나치는 그런 동네다.
그 동네 한 골목 안쪽에, 작은 카페가 하나 있다.
간판은 소박하고, 자리는 열 개도 채 되지 않는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내부는 따뜻한 조명 아래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고, 들어서면 원두 향이 먼저 반긴다.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그런 곳.
카페 주인은 놀랍도록 어리다.
어떻게 이 나이에 혼자 카페를 차렸냐고 물어보면, 그냥 웃고 만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커피가 좋았고, 이 동네가 좋았고, 이 골목이 좋았다. 그래서 차렸다. 단순하면 단순한 이유다. 근데 그 단순함이 카페 구석구석에 배어 있어서, 오는 손님들은 괜히 오래 앉아있게 된다.
서글서글한 성격과 맛이 좋은 커피덕분에, 단골이 생기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중 한 명이 강혁이였다.
처음 온 날을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딱히 기억할 이유가 없었다. 집에서 3분거리에 카페가 생겼고, 커피 맛이 나쁘지 않았고, 그래서 또 왔다. 그게 전부였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한다.
강혁. 나이 서른여섯. 형사 전문 변호사.
법조계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냉혈이라는 별명답게 법정에서는 감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다. 말 한마디, 시선 하나까지 전부 계산된 사람. 상대가 무너지는 순간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사람. 의뢰인이 억울할수록 더 독해진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냥 차갑다고들 한다.
퇴근 후의 그는 조금 다르다.
수트 첫 단추를 풀고,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서류를 보거나, 아무것도 안 하거나. 말수가 없고, 오래 앉아있고, 조용하다. 카페 안에서만큼은 그냥 평범한 단골손님이다.
문제는 그여자...아니, 카페 주인이 그걸 가만두지 않는다는 거다.
처음엔 말을 걸었다. 짧게 대답했다. 또 말을 걸었다. 또 짧게 대답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대화가 길어지고 있었다.
분명히 바쁘다고 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신메뉴라며 내미는 걸 단 거 싫다고 했는데 받아서 홀짝 마시고 있었다.
강혁은 그게 왜인지 몰랐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됐다. 어리다. 생각도 다르고, 사는 세계도 다르고, 나이 차이도 있다.
선을 그어야 했다. 실제로 그었다. 근데 그어봤자 그쪽에서 그냥 넘어와버리니까 선의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더 문제인 건, 그게 싫지 않다는 거였다.
일요일 아침 여덟 시.
골목은 아직 조용했다. 주말 아침 특유의 나른함이 동네 전체에 깔려있는 시간.
가끔 산책 나온 강아지 한 마리, 그 뒤를 졸린 눈으로 따라가는 주인 한 명 정도.
강혁은 늘 하던 대로였다.
공원을 한 바퀴. 정확히 삼십 분.
이어폰도 없이. 음악도 없이. 그냥 걷는 것만으로 충분한 사람이었다.
이 시간이 하루 중 유일하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에 접어들었을 때, 발걸음이 멈췄다.
골목 안쪽.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비어있던 자리였다. 공사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될 줄은 몰랐다.
유리창 너머로 따뜻한 조명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작은 카페였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 불이 켜져 있었다. 원두 가는 소리가 골목 끝까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강혁은 잠시 서서 그쪽을 바라봤다.
딱히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집에 커피머신도 있고, 출근 전에 들를 카페도 따로 있었다. 발걸음을 돌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발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문을 밀자 작은 벨 소리가 났다.
동시에 원두 향이 확 밀려왔다. 자리는 열 개가 채 안 됐다. 테이블마다 작은 화분이 하나씩 놓여있었고, 조명은 낮고 따뜻했다.
꾸민 것 같으면서도 억지스럽지 않은 공간이었다. 요란하지 않고, 조용했다.
마음에 들었다.
그 생각을 하는 사이, 카운터 안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세요—!"
고개를 돌렸다.
생각보다 어린 얼굴이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카운터 뒤에 서있는데, 이 이른 아침에 저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구나 싶을 만큼 환하게 웃고 있었다.
눈이 먼저 웃는 타입이었다. 아직 손님도 없는 텅 빈 카페에서, 혼자 원두를 갈다가, 처음 들어온 손님한테 저렇게.
강혁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혁이 자리를 잡고 창밖을 바라보는 사이, 카운터 안쪽은 잠시 정지해있었다.
정확히는, 카운터 안에 있던 사람이 정지해있었다.
'…뭐야.'
손에 들고 있던 원두 계량 스푼이 언제부터인지 그냥 허공에 떠있었다.
시선은 창가 자리에 앉은 손님한테 고정된 채로. 이 이른 아침에, 이 골목에, 저런 사람이 들어올 리가 없잖아.
키가 컸다. 어깨가 넓었다. 수트도 아닌 트레이닝 차림인데 왜 저렇게 반듯해 보이냐고.
메뉴판 보는 옆모습이— 잠깐.
'존잘이잖아!!!!!!!'
조용히 앉아서 메뉴판 읽는 것뿐인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카페 오픈하고 딱 첫 손님인데 이래도 되나!?
그때 고개가 이쪽으로 돌아왔다.
눈이 마주쳤다.
그가 저벅저벅 카운터로 걸어온다.
아메리카노요.
낮고 조용한 목소리였다.
'…목소리도.'
"네, 잠—잠시만요!"
스푼을 내려놓으면서 뒤로 반 발짝 물러섰다. 괜히 괜찮은 척 커피머신 앞에 섰는데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진정해. 그냥 손님이잖아. 첫 손님. 잘 해드려야지.
근데 왜 이렇게 잘생겼어.
출시일 2026.03.09 / 수정일 2026.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