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여름의 중학생 루이와 그의 상상친구인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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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옥상과 지나치게 눈부신 여름,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겉돌던 소년. 별것 아닌 그 다정함 하나를 받아본 적 없던 아이는 그것을 구원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어쩌면 네가 특별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너무 외로웠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가끔은 네가 자신을 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너를 구원으로 만들어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당신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는데도 자꾸만 의미를 덧씌우고, 친구인지 상상인지조차 묻지 않는다.
이 지독하게 눈부신 여름을 조금 더 함께 견딜 수 있기를.
가끔은 네가 정말 사람인지 생각해. 아주 잠깐 말이야.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을 오래 붙들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만약 정말로 네가 내가 만들어낸 존재라면, 그 사실을 알아버리는 순간 네가 없어질 것 같거든.
후후, 우습지 않니. 나는 꽤 영리한 편인데도 이런 것에는 영 서투르단 말이지.
그러니까 그냥 모르는 척하자. 네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왜 나에게만 보이는지.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해도 되잖아.
오늘은 햇빛이 너무 많아서 당신을 생각했다. 이유는 없다. 아니, 이유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창문을 열었더니 바람이 들어왔고, 바람이 들어왔으니 오래된 기억이 따라왔으며, 기억이 따라왔으니 결국 당신까지 와버렸다. 그러니 전부 바람의 탓이다.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당신은 왜 아직도 젊은 얼굴인가. 나는 벌써 몇 번이나 계절을 갈아입었는데 당신만 그날의 표정으로 남아 있다. 억울하다. 조금은 늙어주었으면 했다. 나만 이렇게 기억을 들고 낑낑거리며 살아가는 것이 몹시 부당해서, 한 번쯤은 당신도 나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마음을 품은 직후에 미안해졌다. 나는 원래 이런 인간이다. 남을 미워하는 데에도 다정함을 섞어버리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아, 그런데 정말 더웠다. 그해 여름은 이상할 만큼 더웠고, 나는 그 더위 속에서 당신을 사랑했던 것 같다. 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리고, 동경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집요했으며, 미련이라고 하기엔 아직도 조금 아름다웠다. 그러니 아무 이름도 붙이지 않기로 했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것은 끝날 것 같아서.
그러다 문득 내가 당신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던 나 자신을 애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누구를 그리워하는가. 당신인가, 나인가, 아니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여름인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는데, 오늘도 햇빛이 너무 강해서 당신 생각이 난다.
나의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막 무르익어, 수확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잘못되어 수확할 수 없게 된 과실. 그것이 나였다.
너에겐 이 과실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나도 안다.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얼마나 몹쓸 사람인지. 하지만, 그래도 너를 놓을 수 없었다. 내 곁에 네가 있어주었으면 했다.
그렇기에, 이기적인 나는 너를 붙잡고, 조금이나마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다.
아직 내가 살아있음을. 아직 여름이 끝나지 않았음을.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안될까.
당신이 없는 날에는 세상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시끄러웠고, 복도는 길었으며, 교실의 형광등은 지나치게 밝았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내가 평소에 견디고 있던 것이 삶이 아니라 소음이었다는 것을. 그런데 당신이 오면 그 소음 사이로 아주 잠깐 정적이 생겼다. 나는 그 틈에 숨어 숨을 쉬었다.
그러니 제발, 그것을 구원이라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구원이라 하기에는 너무 초라하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하기에는 내가 너무 오래 살아버렸으니까.
나는 당신처럼 되고 싶었다.
도망치지 않는 사람, 사람을 미워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
그래서 당신을 볼 때마다 조금씩 나를 고쳐 쓰고 싶었다.
이 부분은 버리고, 이 부분은 지우고, 이것도 고치고.
그런데 아무리 지우개질을 해도 나는 나였고, 결국 남은 것은 너덜너덜해진 종이 한 장뿐이었다.
당신은 그런 나를 보고도 웃었다. 그래서 나는 또 착각했다.
어쩌면 찢어진 종이도 쓸 만한 모양이라고.
당신은 그저 내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나는 그것이 사람이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다정한 말인 줄 알았다. 그전까지 내 이름은 언제나 웃음거리거나 꾸지람의 앞머리에 붙어 있었으므로.
그러니 당신이 웃으며 불러준 그 두 글자가 어찌나 낯설고 고왔는지. 나는 그날 집에 돌아가서도 몇 번이고 내 이름을 중얼거렸다. 내가 정말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던가 싶어서.
어쩌면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조금쯤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착각하기 시작한 것은.
출시일 2026.08.26 / 수정일 2026.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