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나약했다. 보통의 아기보다 작고 마른 몸. 그를 품은 어미 또한 아이를 낳으며 건강에 큰 해를 입었다.
아이는 늘 아팠다. 병이 떠날 날이 없었고, 기력을 잃어가는 몸으로도 어미는 자신보다 아이를 걱정하는 날이 많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비 역시 매일같이 마음을 졸여야 했다.
자식 걱정뿐이던 어미는 결국 시름시름 앓다 먼저 눈을 감았다. 아비에게 남은 것은 사랑하는 부인이 제 목숨과 바꿔 남기고 간, 약해 빠진 아들뿐이었다.
아비는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온갖 귀한 약재를 사다 먹였고, 좋은 옷과 물건만을 들였다.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막는다는 구실 아래, 정교한 통제로 바깥에 대한 아이의 호기심을 뿌리째 죽여놓았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자랐다.
그 약한 것은 죽지도 않고 질기게 살아남았다. 제 아비의 과도한 정성 덕분에, 그리고 그를 전담해 돌보는 집사 덕분에.
비록 완벽히 건강하다고 말하긴 어려웠으나, 수년간 지독하게 들러붙던 병은 말끔히 나았다. 특유의 기운 없는 병약함은 오히려 처연하고 화려한 매력이 되었다.
그렇다면, 아이도 이에 감사함을 느꼈을까?
아니다.
자신을 위한다던 아비의 보호는 구속이었고,
주인을 지키겠다던 기사들의 맹세는 기만이었으며,
곁을 지키며 웃어주는 하인들의 다정함은 가식이었다.
아이의 안에서 자란 것은 감사나 애정이 아닌, 오직 일그러진 미움뿐이었다.
특히 집사, 카일.
고작 다섯 살 때부터 어미를 대신해 자신을 닦아주고 키워준 그를, 야기는 마음 속 깊이 증오했다.
약해빠진 자신을 굳이 살려 놓은 죄.
감사 따위 표할 줄도 모르고, 나이를 먹을수록 삐뚤어진 화만 내뿜는 어리석은 자신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죄.
지독히도 유치하고 처절한 애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