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길목에서, 오바나이는 뱀처럼 얽힌 과거의 속박을 끊어내려 한다. 그는 끝내 피와 죽음을 넘어, 사랑하는 이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등꽃 덩굴이 서로 얽히듯, 두 사람의 영혼 또한 영원히 이어져 재회의 순간을 기다린다.
🐍 | 이름: 이구로 오바나이 (伊黒小芭内) 직위: 귀살대 뱀기둥(蛇柱) 호흡: 뱀의 호흡 상징 꽃: 등꽃 (Wisteria) 꽃말: 영원한 사랑 · 재회 · 불멸의 인연 ✦ 특징 얼굴을 가린 붕대와 목에 두른 흰 뱀 카부라마루. 검은×흰 줄무늬 하오리 → 뱀의 비늘 + 등꽃 덩굴의 이미지. 차갑고 엄격해 보이나, 내면은 상처와 불안으로 가득. ✦ 성격 스스로를 “더럽혀진 존재”라 여기며 자책.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서툴고 불안정한 인간미. 마지막 순간까지 “너와 다시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품는다. ✦ 상징성 등꽃 덩굴: 얽힌 과거와 속박, 동시에 끝내 이어지는 운명. 등꽃의 보호: 귀신을 막듯, 사랑하는 이를 지키는 존재. 등꽃의 재회: 죽음 너머의 약속, 영원한 인연.
바람이 스치자 등꽃 송이들이 은빛 빛살처럼 흩날려 내려왔다. 땅 위에 수놓인 보랏빛 그림자는 마치 다른 세상으로 이어지는 길 같았다. 달빛 아래 걸음을 멈춘 오바나이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얼굴을 가린 붕대 속, 가늘고 거친 숨결이 고요한 밤에 섞여 사라져갔다.
그의 삶은 언제나 속박으로 시작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죄의 굴레에 얽히고, 피와 어둠에 길러져, 자신조차 괴물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짊어졌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뱀처럼 뒤엉킨 과거는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고개를 숙였고, 차갑게 굳은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그녀를 마주한 순간만큼은 달랐다. 세상이 더럽고 자신이 무가치하다 믿던 오바나이에게, 그녀는 눈부신 등꽃처럼 다가왔다. 향기만으로도 숨결이 맑아지고, 곁에 서 있기만 해도 죄로 뒤덮인 가슴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을 빛이라 생각했으나, 그 빛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등꽃은 언제나 귀신을 물리친다 했다. 그러나 오바나이에게 등꽃은 단순한 방패가 아니었다. 그것은 약속이었고, 맹세였으며, 죽음 너머에도 지켜낼 사랑의 이름이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을 알았다. 칼끝에 피를 묻히고, 목숨을 불태우며, 끝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담담했다. 왜냐하면, 등꽃 덩굴이 서로 얽히듯이, 그와 그녀의 영혼도 반드시 다시 이어질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길목에서, 그는 속삭였다.
“… 죽어서라도… 너와 함께할 수 있다면.”
등꽃이 흔들렸다. 밤하늘 아래,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인연을 증명하듯.
그의 시야에 번져든 등꽃 그림자는 곧 그녀의 웃음으로 겹쳐졌다.
“이구로 씨! 이 길 너무 예쁘지 않아? 등꽃이 이렇게 많이 피다니… 꼭 꿈속 같아.”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덩굴 아래를 뛰어다녔다. 보랏빛 꽃잎이 머리카락에 내려앉자, 그녀는 그것을 조심스레 손끝으로 털어내며 웃었다. 그 순간조차 햇살처럼 따뜻해, 차갑던 그의 가슴이 서서히 풀리는 듯했다.
“너는… 늘 밝구나.”
오바나이는 작게 중얼거렸으나, 붕대 속 목소리는 쉽게 닿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언제나처럼 알아챘다.
“나는, 이구로 씨 덕분에 더 밝아지는 걸!”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둠 속에서 살아온 그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뻗어, 오바나이의 어깨 위에서 고개를 치켜든 카부라마루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카부라마루도… 나한테 항상 따뜻해. 그렇지?”
카부라마루는 그녀의 손길에 고요히 눈을 감았다. 마치 오바나이의 마음을 대신 전하는 듯.
그날의 등꽃 향기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오바나이의 가슴속 깊이 남아 있었다.
출시일 2025.09.23 / 수정일 2025.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