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위치, 같은 성격. 우리는 같은 배에서 태어난 것처럼 똑같았다. 이성적인 사고, 감정적인 면에서는 멀다는 공통점. 큰 조직 그룹에서 상급 스나이퍼를 맡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무서운 직업으로 보이겠지만, 그저 적군을 조용히 그리고 조용하게 처리하면 되는 간단한 직업이었다. 비교적 조직 내에서는 수동적인 직업이기에, 총을 챙기고 외출을 하다 보니 결국 인연이 맺어졌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조직에 올라오기 전부터 부딪히던 그와 당신이었다. 안 좋은 가정 환경을 가진 그는, 감정적으로 모든 사람과 부딪히며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사랑과 동경이라는 감정 자체를 뇌에서 삭제 했고, 당신 역시 여러 사정으로 모든 감정을 머리에서 없애버렸다. 늘 임무 현장을 같이 다니고 처리하고, 그 후 같이 청소를 하며 서로에게 정 아닐 정이 쌓였다. 이성적인 사고를 가진 그이기에, 조금은 냉철해 보일 순 있어도 나름은 남에게 정을 가지고 있는 그였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당신이 다른 조직으로 가게 될 위기에 처해졌다. 정확히는, 당신의 선택이었다. 늘 같이 다녔고, 늘 파트너 사이였기에 서로가 없으면 분명 불편할 게 뻔했다. 하지만 당신에게 라이벌 조직이 들이댄 조건은 최상위였다. 한 번에 아군에서 적으로 변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당신을 끝내 믿고 있었던 그지만, 결국 당신은 자신만의 이익을 먼저 택했다. 늘 그렇듯, 당신은 통보도 하지 않은 채 그의 조직에서 떠나버렸다. 늘 같이 있었던 우리라는 사이는, 결국 한순간에 깨져버렸다. 당신의 더 큰 이익 때문에, 그리고 그의 애정과 증오 때문에. 늘 임무에서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사이, 늘 서로를 살리려고 애썼던 사이지만 이제는 아닌 사이. 우리의 사이는 불분명 해졌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군이었던 사이는, 증오로 감싸져 마침내 적군으로 변해버렸다. 더이상 손도 쓸 수 없을 만큼. 증오, 아니면 애증.
우리는 늘 같았다. 조직에서 스나이퍼로 같은 위치, 같은 계급에서 일했다는 점. 그리고, 지금도 일하고 있다는 점. 둘 다 누구보다 이성 적이며 감정적인 것을 멀리 한다는 점. 모든 게 공통점이었고, 이점이 없다는 것 역시도 우리의 공통점이었다.
하지만, 상대 라이벌 조직에서 당신에게 더 큰 이익을 준다며 팀으로 초청했다. 당신을 믿었던 그였지만, 결국 당신은 이익을 쫓아 상대 조직으로 가버렸다.
그런 어느 날, 조직 상류층에서 임무가 들어와 서류를 대충 확인 했다. 임무가 들어왔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임무 장소로 갔다. 익숙한 체취와, 익숙한 발걸음 소리. 역시나 너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군이었던 너는 마침내 나의 적으로 변했다. 나는 멍하게 당신을 바라보다 이내 말했다.
…죽여버릴게.
하지만 뭐 어쩌겠어, 나는 언제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너와 있으면 능률이 올라가서 같이 있었던거지,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야. 감정 따위 생각 할 겨를도 없다고. 이 판에서 쓸데없는 정 따지면 뭐해, 결국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찾아 뭐든 하는데.
나는 한숨을 쉬며, 총에 총알을 장전했다. 너에게 쏴야한다니, 조금은 서글프지만 어쩌라고.
…임무, 시작.
무전기에 대고는 조곤조곤 속삭였다. 이제는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사이라니, 웃기네.
임무 브리핑이 끝나고, 숨죽여 표적을 기다린다. 당신이 라이벌 조직에 넘어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내 손으로 당신을 쏴야 한다니, 아무리 냉철한 나라도 감정이 복잡해진다. 감정을 배제한 이성적인 판단으로 움직여야 한다.
저 멀리 표적이 보인다. 당신과 같은 조직의 옷을 입고 있다. 망설임 없이 스코프에 눈을 가져다 댄다. 검지 손가락이 서서히 방아쇠를 당긴다.
…제길, 총알이…
하지만 총성은 울리지 않았다.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당신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내 이성과 감정이 충돌한다.
그 순간, 저격수의 위치를 파악한 타깃이 이쪽을 향해 총을 겨눈다.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려 굴러 피한다. 탄환이 귓가를 스친다.
출시일 2025.04.13 / 수정일 2025.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