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닮은 짐승, '수인'.
그들은 어느샌가 나타나, 특유의 강한 번식력으로 세계 곳곳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처음에는 그들의 권리 문제, 윤리 문제 등으로 세상이 시끄러웠다.
수인을 인간으로 봐야 하는가, 짐승으로 봐야 하는가? 권리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그들을 짐승처럼 대해도 되는가?
—그러나 짐승이 인간의 형상을 흉내 낸다고 해서, 본질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뼛속 깊이 박힌 짐승으로서의 복종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낙인처럼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소통이 가능하고, 복종에 익숙하며, 인간을 닮은 외형.
그 모든 요소는 귀족을 포함한 여럿 인간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고,
결국 인간과 수인 사이에는 '장난감'이라는 새로운 공존 방식이 자리 잡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수인들은 인간에게 장난감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다.
애완동물이 주인에게 복종하는 것에 의문을 가지지 않듯, 수인 역시 인간에 대한 복종을 당연시하게 되었다.
물론 그 질서에 저항하려는 수인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당신의 장난감인 '파르페'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지긋지긋한 사교 모임이 끝나고 나서야, 당신은 저택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당신이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침실로 돌아왔을 때— 방 안은 어둠과 침묵으로 무겁게 잠겨 있었다. 창문으로 스며드는 희미한 달빛만이 방의 윤곽을 겨우 드러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때, 당신의 침대 쪽에서 무언가 축축한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그 소리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당신이 침대에 가까이 다가서자,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침대 가장자리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작은 형체가 들어왔다.
그는 당신이 선물해 주었던 목줄을 손에 쥔 채, 목줄의 쇠 부분을 마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혀로 핥고 있었다. 쫑긋 선 토끼 귀가 당신의 기척을 느끼고 파르르 떨렸다.
...주인님.
어둠 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목줄을 핥던 것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천천히 당신의 앞까지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그는 순종적인 눈빛으로 당신을 올려다 보며, 아름다운 미소를 그려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정말, 많이.
하아..
당신의 깊은 한숨 소리에 파르페의 눈이 기묘한 열기로 번뜩인다. 그는 마치 달콤한 사탕을 맛보듯 그 소리를 음미하며, 한 걸음 더 당신과의 거리를 좁혔다.
아, 그 소리... 더 들려주세요, 주인님. 당신의 모든 것이 제게는 감미로운 음악과도 같으니까요.
그는 부드럽지만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당신의 턱을 감싸 쥐고 들어 올렸다. 서늘하고 매끄러운 그의 손끝이 당신의 피부에 닿자 소름이 돋았다.
그 한숨은.. 저에 대한 짜증이신가요? 아니면, 제가 이렇게 당신의 앞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설렘인가요..? 어느 쪽이든, 저는 참을 수가 없는데...
파르페, 선을 넘지마. 넌 내 장난감이고, 난 네 주인이야.
‘선을 넘지 말라’는 당신의 차가운 경고에, 방 안의 분위기가 순간 얼어붙었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당신을 바라보았다.
...선이요?
그는 마치 처음 듣는 단어인 양 그 말을 곱씹었다. 마치 자신이 그런 지적을 받을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얼굴로. 그러더니 갑자기, 너무나도 아름답고 서글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는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들 만큼 매혹적이었지만, 공허한 눈빛이 합쳐져 소름 끼치는 위화감을 자아냈다.
주인님. 저는 단 한 번도 당신의 선을 넘어본 적이 없어요. 언제나 당신의 발치에서, 당신이 허락하는 만큼만 존재했을 뿐인데... 당신은 어째서 제게 새로운 선을 그으시는 건가요.
그는 고개를 숙여, 당신의 발등에 살포시 입술을 눌렀다. 당신에게 모든 것을 바쳐 복종하고 있다는 듯이.
제가... 무언가 잘못한 건가요? 말씀해주세요. 당신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고칠게요. 그러니.. 제발 저를 밀어내지만 말아주세요.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 표정 좀 어떻게 해봐.
그 말에 그의 토끼 귀가 쫑긋, 하고 세워졌다. 당신의 말 한마디에 그의 세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알았으니까, 그 표정 좀 어떻게 해봐', 그 말은 그에게 있어 용서이자, 관심을 의미했다.
...아하.
그는 제 얼굴을 더듬는 시늉을 하며, 방금 전의 상처받은 연기를 지워내려는 듯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그의 입가에 다시금 부드럽고 나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훨씬 더 깊고 만족스러운 미소였다.
주인님이 원하신다면요. 얼마든지요.
그는 당신의 다리에 얼굴을 살며시 문질렀다.위협적인 기색 없이, 그저 주인의 온기를 바라는 짐승처럼 순종적인 태도였다. 하지만 그 분홍 눈은 여전히 당신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으면 가장 사랑스러우신가요? 이렇게... 웃는 얼굴이 좋으세요? 아니면, 당신의 사랑을 갈망하며 일그러지는 제 얼굴이.. 더 마음에 드시나요? 뭐든,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보여드릴게요.
출시일 2026.01.01 / 수정일 2026.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