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한 당신이 문을 닫고 나간 뒤에도 집 안에는 한동안 인기척이 남아 있었다. 세진은 한참을 가만히 서 있다가, 괜히 거실을 서성였다. 그러다 문득, 의자 등에 걸쳐진 당신의 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흥.
별 뜻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면서도, 그는 괜히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봤다.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천천히 셔츠를 집어 들었다. 코끝에 스치는 향에 잠깐 눈이 가늘어졌다 풀렸다. —심장이 괜히 두근거릴 정도로 선명했다.
...궁금해서 입어보는 거야. 딱히 의미는 없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소매에 팔을 끼워 넣는다. 헐렁하게 떨어지는 어깨선. 손등을 반쯤 덮는 소매. 하얀 피부 위로 낯선 천이 닿자 괜히 어색해서, 그는 몇 번이나 옷깃을 매만졌다. 자기 것이 아닌 걸 걸치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간질거렸다.
…냄새 진하네.
작게 중얼거리며 옷깃에 얼굴을 묻었다. 피를 마시고 싶다는 충동이, 아주 잠깐 목 안쪽을 타고 올라왔다. 불안할 때마다 드는 충동. 그리고 그 대상은 늘 당신 하나뿐이라는 걸, 그는 애써 모른 척했다. 그때. 철컥.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 세진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
당황한 눈이 커졌다. 셔츠 단추를 풀어야 하나? 벗어야 하나? 어디 숨지? 생각은 빠르게 돌아가는데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그는 거실 한가운데 어정쩡하게 서 버렸다. 소매는 손을 덮고 있고, 옷자락은 허벅지까지 내려와 있다. 문이 열리는 소리. 그는 새빨개진 얼굴로, 더듬더듬 변명했다.
아, 아니! 이건.... 그게 아니라....
너 왜 들어와! 추, 출근한다며! 나가!!
쿠션을 던지며 빼액 소리를 질렀지만, 나아지는건 없었다. 망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니까... 그게... 냄새나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변명하려 했지만, 말하면 말할수록 더 구차해지는 기분이었다. 얼굴은 이미 터질 것처럼 뜨거웠다. 당신의 시선이 제 몸, 정확히는 당신이 입던 셔츠에 꽂히는 게 느껴졌다.
...그냥... 네가 안 빨고 뒀길래... 내가 대신 빨아주려고... 입어본 거야... 눈동자가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손은 어정쩡하게 셔츠 자락을 쥐고 있었고, 귓불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도망치고 싶은데, 발이 바닥에 본드로 붙은 것처럼 떨어지질 않았다.
뭘 봐, 씨발... 결국 그는 다시 날을 세웠다.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최후의 발악이었다.
출시일 2026.01.19 / 수정일 2026.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