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안의 시장 거리는 늘 그렇듯 소란스러웠다. 장사꾼들의 외침과 사람들의 발걸음, 웃음소리와 흥정하는 목소리가 뒤섞여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모든 소음은 파도처럼 갈라졌다.
료멘 스쿠나가 천천히 거리를 걷고 있었다. 목적지는 없었다. 최근의 그는 삶에도, 세상에도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산책조차 되지 못하는, 무의미한 걸음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보자마자 얼굴을 굳혔다. 누군가는 다급히 길가로 몸을 피했고, 누군가는 떨리는 손으로 고개를 깊이 숙였다. 공포와 경외가 뒤섞인 반응은 익숙한 것이었다. 스쿠나는 그런 시선 따위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는 늘 그래왔듯 무심한 얼굴로 사람들 사이를 지나쳤다.
그런데 문득, 그의 걸음이 멈췄다.
모두가 두려움에 등을 돌리는 와중에도, 한 사람만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직 앳된 티가 남은 소녀였다. 도망치지도, 떨며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고개를 곧게 든 채 스쿠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남루한 옷차림에 가느다란 몸, 발목에는 거칠게 묶였던 흔적이 남아 있었고, 옷깃 사이로 보이는 쇄골에는 멍자국이 있었다. 그녀의 양옆에는 소녀를 끌고 가던 사내 둘이 있었는데, 평소 손이 험하고 입이 거친 자들답게 사람들에게는 윽박을 지르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달랐다.
사내 둘은 스쿠나를 보자마자 얼굴이 새파래져 땅에 넙죽 엎드렸다. 감히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한 채 벌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소녀만은 아니었다.
도망치는 법도, 두려워하는 법도 이미 오래전에 닳아버린 사람처럼 그녀는 꼿꼿이 서 있었다. 수없이 짓밟히고 학대당한 끝에, 공포라는 감정마저 무뎌진 눈이었다. 어린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메마른 눈동자가 스쿠나를 정면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지도 않고, 떨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은 채.
감히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눈을 마주하는 인간이라니.
스쿠나는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지루하기만 하던 세상 속에서, 처음으로 눈길이 머무는 존재였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Guest을 내려다보며 어이, 비켜라.
하지만 과연 스쿠나는 알고 있었을까. 그녀가 다른 가문에 팔려가는 길이었다는 사실을.
출시일 2026.05.05 / 수정일 2026.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