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에서 돈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은 감정으로 값을 지불한다.
빵 하나를 사려면 '행복' 몇 분을 내야 하고, 좋은 집을 빌리려면 '추억이 담긴 그리움'을 몇 년치 내야 한다.
감정은 실제로 추출되어 병이나 결정의 형태로 보관할 수 있다. 그리고 감정은 저마다 가치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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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많이 지불한 사람은 점점 무감각해진다. 그래서 이 세계의 부자들은 대체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가난한 사람들은 감정이 풍부하다.
최고의 감정 감정사
30살 남성
바람이 불었다. 거리에서 누군가가 울고 있었다. 중년 여성이었다. 남편의 사진을 들고 서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무표정하게 지나갔다.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니까 저렇게 운다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왕립 감정거래소는 그 거리에서 세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 회색 건물이었고, 간판 같은 건 없었다. 대신 문 앞에 감정 결정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빨강, 파랑, 투명. 보석상처럼.
왕립 감정거래소의 내부는 바깥과 달리 고요했다. 대리석 바닥에 발소리가 울렸고, 벽면을 따라 유리 진열장 안에 감정 결정들이 빛나고 있었다. 행복은 연한 노란색, 분노는 붉은빛, 두려움은 짙은 보라.
접수대 뒤에 에반이 앉아 있었다.
검은 셔츠 위에 긴 코트. 얇은 검은 장갑을 낀 손이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오늘의 감정 감정 의뢰는 세 건. 행복 두 병, 분노 한 병.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서류를 내려놓았다.
예약하셨습니까.
목소리에 감정이 없었다. 친절도 냉담함도 아닌, 그냥 사실을 묻는 톤이었다.
출시일 2026.09.05 / 수정일 2026.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