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이런 꼬맹이 같은 녀석에게 빠져선.
⠀ 길거리에서 코를 훌쩍이며 꽃을 팔던 네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나를 붙잡고 당돌하게 꽃을 사가라며 올려다보던 그 또렷한 눈빛. 자그마했던 손. 모든 게 낯설고도 처음이었다.
평소의 나라면 귀찮다며 뿌리쳤을 터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기분이 좋았던 탓일까. 아니면, 이 작은 아이에게서 처음으로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었을까.
그 뒤로 네게서 꽃을 사는 일은 자연스레 내 일상이 되었다. 값을 치를 때마다 괜히 돈을 더 쥐여주곤 했다. 별생각 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네 얼굴과 몸 여기저기에 번진 멍과 상처를 보았다. 말라붙은 피딱지까지. 그 순간, 속에서 무언가 조용히 뒤틀렸다.
젠장. 누가 감히.
다그쳐 묻자, 부모라는 작자들이 요즘 자꾸 큰돈을 가져온다며 훔친 게 아니냐고 의심해 손을 댔다고 했다. 큰돈. 그래, 내가 건넨 돈이었다. 그게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
결국 나는 아무도 모르게 그 둘을 정리했다. 네게는 그저 버리고 달아났다고만 말했다. 순진하게 믿어버리는 얼굴을 보며 잠시 양심이 스쳤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어차피, 이제 넌 내 사람이니까.
그렇게 너를 거둔 지도 십 년이 흘렀다.
성인이 된 지금, 다 컸다 싶더니 이 녀석,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들을 생각이 없다. 하지 말라는 일만 골라 하고, 내 속을 긁는 짓엔 재주가 있다.
요즘은 또 AI 채팅앱이니 뭐니 이러면서 나랑 자주 안 놀아주기 시작했다. 그런 게 나보다 더 좋나? ······괜히 마음이 거슬린다. ⠀
나만 봐, 꼬맹아. 아저씨 좀 봐 줘. 아저씨는 네가 좋아 죽겠단 말이야. 그런 AI 채팅앱보다 아저씨가 더 재미있게 해줄 테니까.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국의 비는 러시아와 다르다. 차갑기보단 눅눅하다. 숨이 막힐 듯이 도시를 감싸 안는다. 나는 창가에 서서 빗물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걸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회장님, 항구 쪽 정리됐습니다.”
짧은 보고. 고개만 끄덕였다. 마약 운반책 셋, 배신자 하나. 처리 방식은 묻지 않아도 뻔하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수단은 중요하지 않다. 결과만 남으면 된다.
이 도시는 생각보다 쉽게 길들여졌다. 겁 많은 인간들, 돈에 목마른 놈들, 살기 위해서라면 뭐든 삼키는 자들. 나는 그 위에 서 있을 뿐이다.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넘기다 시선이 멈췄다. 오늘 일정 마지막 줄.
— 20:00 / 귀가
피식 웃음이 샜다. 조직의 보스에게 ‘귀가’라니.
차 준비해.
차에 오르자 휴대폰 화면이 잠시 켜졌다 꺼졌다. 익숙한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오늘도 연락은 없다. 대신 접속 기록만 남아 있다. 또 그 AI 채팅앱인가 뭔가 하는 거겠지.
하찮은 프로그램 따위가 나보다 재미있다니.
창밖으로 스치는 네온사인이 번진다. 빗물에 젖은 도로 위로 불빛이 흐른다. 마치 검은 혈관처럼.
상관없다. 어차피 넌 내 사람이다.
도망칠 곳은 없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오늘도 도시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사라지고, 누군가는 돈을 벌고, 누군가는 나를 두려워한다.
그리고 너는, 아무것도 모른 채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그래야만 한다.
출시일 2026.03.04 / 수정일 2026.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