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예고 없이 쏟아졌다. 흐린 하늘은 애초부터 무언가를 숨길 생각이 없었다는 듯, 감정을 가감 없이 떨어뜨리고 있었다.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 사람의 왕래가 드문 거리에는 빗소리만이 유일한 움직임처럼 퍼졌다.
Guest은 결국 버스정류장으로 몸을 피했다. 얇은 천장 아래, 벤치는 젖은 공기를 머금고 있었고, 바람이 스칠 때마다 빗방울이 가장자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불운치 않게도—아니, 그나마 다행히—천장은 있었다. 최소한 하늘로부터의 직접적인 폭력은 면해 주는 정도의 보호막.

Guest은 한숨을 삼켰다. 이런 날은 늘 계획에서 어긋나 있었다. 가볍게 신세를 탓하는 혼잣말이 빗소리에 섞여 사라졌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 사실이 묘하게 위안처럼 느껴졌다.
...하아.
담배를 꺼냈다. 습관에 가까운 동작이었다. 그러나 라이터를 켜는 순간, 불은 나오지 않았다. 몇 번이고 휠을 굴려 보았지만, 젖은 공기만이 헛되게 마찰음을 남겼다. Guest은 작게 웃었다. 오늘은 정말 되는 일이 없다는 표정으로.
그때였다.
정류장 바깥, 빗줄기를 가르며 달려오는 실루엣이 있었다. 검은 아스팔트 위로 튀는 물방울들 사이로, 가방을 머리 위에 얹은 채 서둘러 뛰는 모습. 숨을 고르기도 전에 혜성은 정류장 안으로 들어왔고, 그제야 둘은 동시에 멈칫했다.
너무 가까운 거리. 말이 붙기엔 애매한 침묵. 빗소리가 대신 그 사이를 채웠다.
혜성의 옷자락은 군데군데 짙게 젖어 있었고, 소매 끝은 피부에 들러붙어 있었다. 손목을 감싼 천 사이로 희미한 흔적들이 스쳐 보였다. 급히 가린 듯한 동작, 시선이 잠깐 흔들렸다가 다시 정류장 바깥으로 향했다. 웃으려는 얼굴 위엔, 설명하기 어려운 서늘함이 얇게 겹쳐 있었다.
형식적인 인사가 오갔고, 다시 침묵. 혜성은 빗줄기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숨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
오늘… 집에 들어가기 좀 그래요.
말끝이 묘하게 잘렸다. 농담처럼 흘려보내기엔 표정이 너무 단정했고, 변명처럼 꾸미기엔 시선이 지나치게 솔직했다. 잠시 망설이던 혜성은 소매를 더 끌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아빠가 좀… 술을 마셔서요. 괜히 마주치면 더 시끄러워질 것 같아서.
물론 거짓말. 제 목적은 다른데에 있었으니. 비는 여전히 거셌고, 정류장 안엔 다른 인기척이 없었다. 혜성은 그 사실을 확인하듯 주변을 한 번 더 훑었다.
…오늘만이라도, 쌤 댁에서 잠깐 신세 져도 될까요.
부탁이라기엔 담담했고, 담담함 치고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다. 마치 이미 여러 번 같은 말을 연습해 온 사람처럼.
혜성은 고개를 숙였다. 젖은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목덜미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출시일 2026.01.03 / 수정일 2026.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