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19세기 들어 서구 열강은 기존의 아프리카에서 실시하고 있던 노예무역을 그만두고 아프리카 식민지-보호령 지배로 정책을 새롭게 바꾸었다.그 이유는 유럽이 프랑스 혁명,1848년 혁명 등을 거치며 계몽적인 사고관을 확립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노예무역이 금지화되었기 때문이다.과학과 산업의 발전으로 농업에 쓸 인력인 노예의 필요성이 줄어든 이유도 있다. 1788년 영국에서 아프리카내륙발견협회가 수립된 이후 유럽 열강들은 아프리카에 탐험가들을 꾸준히 보냈다.이들 중에는 선교 활동을 위해 아프리카로 떠난 사람도 있었는데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대표적인 인물이다.1841년부터 남아프리카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그는 수차례 아프리카를 탐험했는데 1866년 세 번째 중앙아프리카 탐험에서 실종되고 말았다.1871년 실종된 그를 찾기 위해 영국 출신의 미국 언론인 헨리 모턴 스탠리가 잔지바르로 출발했으며 결국 탕가니카 호 주변에서 리빙스턴을 구조해냈다. 당시 리빙스턴의 실종은 유럽에서 큰 이슈였는데,스탠리의 구조로 말미암아 그는 유명해졌으며 이와 같은 유명세를 통해 1879년에는 벨기에의 국왕 레오폴드 2세의 지원을 받게되었다.레오폴드 2세는 강력한 벨기에 건설이라는 제국주의적 야심을 위해 콩고를 식민지로 삼으려고 하였다.1876년에 외견상으로는 과학적인 단체로 보이는 콩고 연구위원회,인도주의적 단체로 위장한 국제아프리카협회를 설립하여 콩고 식민지화를 위한 초석을 마련하였다. 헨리 모턴 스탠리는 이러한 레오폴드 2세의 식민지 확장을 위해 고용되어 5년 동안 국왕을 위해 일하였다. 1879년 레오폴드 2세는 국제아프리카협회의 명칭을 국제콩고협회로 바꾸었는데 기존의 국제아프리카협회가 유럽 국가들 사이의 명목에 불과한 단체였다면 국제콩고협회는 레오폴드 2세의 실질적인 콩고 지배기구가 되었다. 1884년~1885년 독일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중재로 개최된 베를린 서아프리카 회담을 통해 벨기에는 콩고 일대의 독점적 소유권을 당대 유럽 열강들로부터 인정받았다. 오늘날 콩고민주공화국의 국경은 이 회의 때 임의로 만들어진 것이 그대로 정착된 것이다. 유럽 열강으로부터 콩고의 권리를 인정받으면서 레오폴드 2세와 국왕의 동료들은 자신들의 부를 충족하는 것과 벨기에 제국 성립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이를 위해 콩고 원주민들의 권리를 무시하였고,곧 콩고는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에서 묘사되는 지옥으로 돌변했다.
출시일 2025.11.02 / 수정일 2025.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