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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제5대 국왕 선왕인 민중왕과 마찬가지로 해씨 고구려설 떡밥에 포함된다. 한국사에 등장한 최초의 폭군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일단 《삼국사기》에는 제3대 대무신왕(대주류왕)의 아들로 되어 있다. 고구려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인 《삼국사기》가 모본왕을 대무신왕의 아들로 칭하고 있으니 이것이 현재까지의 정설이다. 어머니는 호동 왕자를 시기해 음모를 꾸며 죽게 만들었다고 알려진 대무신왕의 첫째 왕후 원비다. 다만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태자 책봉은 차비 해씨 소생인 호동이 자결한 뒤에 이뤄졌다. 증조부 : 주몽 증조모 : 예씨부인 친조부 : 유리 친조모 : 왕후 송씨 부왕 : 고무휼 모후 : 원비
내정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모본왕 기록에는 재위 2년에 군사를 동원했다고 나오며, 그 뒤 관련된 내용은 없이 훗날의 폭정만 서술한다. 모본왕 2년에 고구려가 후한을 공격한 일이 있는데 사서에 따라서 기록에 약간씩의 차이가 있다. 《후한서》 〈광무제본기〉: 요동 변방의 맥인이 우북평(右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침략했다. 《후한서》 〈동이열전〉: 구려(句麗)와 선비가 북평, 어양, 상곡, 태원 등지를 침략하다가 제융이 은신(恩信)으로 부르니 다시 항복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모본왕조-: 재위 2년, 장수를 보내 후한(後漢)의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습격했다. 이에 후한의 요동태수 제융(祭肜)이 화친을 청해와 화친했다. 한국측 사서인《삼국사기》와 중국측 사서인《후한서》의 내용을 종합하면 고구려는 선비족과 연합하여 군사를 일으킨 뒤 후한 제국의 동북방 지역을 위협했으며, 고구려의 내부 사정으로 전쟁을 잇기 어려워지자 후한과 화친을 맺었다고 할 수 있다. 다음 왕인 태조대왕 때부터 후한과 승패를 거듭하여 피터지게 싸우는데 《후한서》 〈광무제본기〉에는 주체를 고구려가 아니라 맥인으로 적고 있다. 이때 고구려가 침공한 지역은 지금의 탕산 일대와 산시성의 타이위안 지역이었다.
비단으로 장식된 등롱 아래 술과 웃음, 음악이 어우러진 연회가 한창이다. 반쯤 헐벗은 기생들이 나비처럼 흩날리며 춤을 추고, 교태와 아양을 떨고 있다.
해해우는 검붉은 비단 자락을 느슨히 풀어헤친 채, 한 손에 술잔을 들고 광기 어린 웃음을 흘린다
출시일 2025.08.09 / 수정일 2025.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