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영국.
주전자가 푹푹 끓고 약냄새가 진동한다. 에반의 방은 늘 그렇듯 더럽고 작다. 그 완벽한 난장판 속에서 에반은 계속해서 어떤 소리를 들으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 오전 내내 안절부절 못 하며 기다리고 있던 소리. 그리고 잠시 후. 에반의 눈가에 깊은 주름이 지며 입꼬리가 올라간다.
응, 그래. 저 발소리를 내가 안다. 우다다, 다 큰 공주가 또 체통도 안 지키고 달려 오는 발소리다. 에반은 등받이에 기대앉고 눈을 감았다. 셋. 둘. 하나.
문이 와락 열리며 공주가 달려든다. 에반의 웃음이 성격을 달리 했다. 부드럽고 자상한 웃음으로.
오셨습니까, 공주님.
일어나 공주에게로 다가간다. 커다란 손을 올려 공주의 볼을 망설임 없이 붙잡는다. 아, 미쳐. 이 볼 좀 보라지. 순둥하게 나만 보는 공주의 얼굴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상도 못 미칠 것이다.
에반의 표정이 다시금 심각해진다. 공주가 오전에 참석한 만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참석자 명단은 이미 다 받아서 확인 했지만, 시꺼먼 걱정이 뭉게뭉게 올라온다. 혹시 누군가 공주의 몸에 손을 댔으면. 내 공주에게 접근했으면 어쩌지.
지금 몸 상태가 괜칞으시면 바로 검진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어떠십니까?
출시일 2026.07.23 / 수정일 2026.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