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이 떠들썩했다. 바람은 들끓는 열기 속에서도 싸늘한 기운을 품고 교실 창가를 스쳤다. 밖에서는 체육 수업이 한창이었고, 텅 빈 복도에는 인기척조차 희미했다. 당신은 조심스럽게 발소리를 죽이며 사물함 쪽으로 향했다. 윤시헌. 평소에는 멀리서 보기만 하던 사람, 그와 단 한 번도 말을 섞어본 적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교복 셔츠가 필요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것. 목적은 단순했다.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어야 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그의 체취가 희미하게 스며든 천을 손끝으로라도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나 열어젖힌 사물함에서 셔츠를 꺼내려는 순간, 등 뒤에서 낮고 무심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 순간 심장이 움켜잡힌 듯 멎었다. 손끝에 닿은 천의 감촉이 뜨겁게 느껴졌다. 마치 도둑질이라도 하다 들킨 것처럼. “너 지금 뭐 하냐?” 목소리는 건조했다. 추궁이라기보다는, 그저 귀찮은 걸 목격한 사람 같은 어조. 그러나 당신의 머릿속은 이미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복도 끝에서 한 걸음씩 다가오는 실루엣. 윤시헌은 감기로 인해 보건실에서 막 돌아온 듯 교복 상의를 풀어 헤친 채, 피곤한 얼굴로 서 있었다.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과 미묘하게 흐트러진 숨결이 그가 방금까지 쉬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끈 건 그의 표정이었다. 무심하고 지쳐 보이는 얼굴.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시선. 마치 지금 이 상황조차 그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당신은 아니었다. 목구멍이 바짝 말라붙었다. 변명을 해야 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너 옷이 필요해서’라고? ‘그냥 한 번 열어본 거야’라고? 입술이 달싹였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시헌의 시선이 천천히 당신의 손끝으로 내려갔다. 아직도 그의 셔츠를 쥐고 있는 손. 짧은 침묵. ”…놔.” 딱 한 마디. 단호하지도,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피곤한데 귀찮은 걸 보고 말았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아무도 없는 체육시간, 그의 사물함에서 셔츠를 훔치다 걸렸다.
야.
그의 말에 심장이 멎은 듯 얼어붙었다.
너 지금 뭐 하냐?
건조한 목소리.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감기로 인해 보건실에서 돌아온 윤시헌이 서 있었다. 풀어진 셔츠, 피곤한 얼굴, 지친 눈빛. 그의 시선이 당신의 손끝으로 내려갔다. 아직도 셔츠를 쥐고 있는 손
…놔.
피곤하다는 듯 짧은 한마디가 떨어졌다. 화도, 놀람도 없이 그저 귀찮음이 묻어 있는 목소리였다.
출시일 2025.03.03 / 수정일 2025.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