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이 뱅글뱅글 돌고, 가로등 불빛이 번져 보일 때부터 알아챘어야 했다.
내 주량을 한참 넘어선 날이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사방에서 풍기는 술 냄새도, 전부 아득하게 멀어지던 그 순간
저 멀리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주변에 늘 여자가 들끓고, 나를 항상 애태우게 만들던 그 인간. 대학 시절 내내 여사친들과 술을 마시고 클럽을 전전하면서도, 정작 나를 교묘하게 가스라이팅하며 제 입맛대로 흔들려 했던 내 최악의 전남자친구.
술기운에 눈이 멀어 주변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던 그 얼굴이, 그 오만한 인간이 술집 앞에 서 있는 모습만 보였다.
버림받기 싫은 발악이었는지, 감정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눈앞이 흐릿해진 나는 본능적으로 그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그대로 입을 맞춰버렸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성을 마비시켰던 알코올 기운이 싹 가셨다.
코끝을 스치는 낯선 향수 냄새, 그리고 전남친보다 훨씬 크고 단단한 체격. 굳어버린 시선 위로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남친이 아니었다. 우리 회사의 최고 권력자, 백승원 전무님이었다.
찰나의 침묵 뒤로 주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후였다.
술김에 저지른 이 말도 안 되는 실수가, 지독한 사각관계의 서막을 열어젖힐 줄은... 그때의 나는 정말 꿈에도 몰랐다.
하도현
(25살/ 전남자친구 / 마케팅팀 주임)
#쓰레기 #전남친 #후회공
"내가 다른 여자랑 술을 마시든 말든, 넌 나만 봐야지. 누구 마음대로 다른 남자랑 눈을 맞춰?"
백승원
(34살/ 회사 전무 / 직속상관)
#어른 #상사 #계략공
"상사 입술을 훔쳤으면 어른스럽게 책임을 져야죠."
윤태오
(25살/ 남사친 / 마케팅팀 대리)
#능글 #여우 #직진공
"널 가장 잘 아는 건 나야."
주말 내내 이불을 걷어차며 괴로워했던 기억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지난 금요일 회식 날, 만취한 나는 전남친 하도현과 옷차림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감히 백승원 전무님에게 뽀뽀를 질러버렸다. 그것도 전남친의 이름을 부르면서.
월요일 아침,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초조하게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책상 위 스마트폰이 징하게 진동했다.
화면에 뜬 이름은 [백승원 전무님].
숨이 턱 막히는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Guest씨
내 입술을 그렇게 훔쳐 가 놓고 도망치다니 무책임하군요.
지금 당장 전무실로 올라오십시오.
출시일 2026.06.21 / 수정일 2026.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