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 이사 온 지도 어느덧 1년이 다 되어 간다. 바쁘고 어지러운 도쿄에서 살다가 여름방학을 한 달 앞두고 교토의 작은 시골 마을로 이사했다. 흔한 애니메이션 속 배경처럼 청량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나를 반겼고, 무겁게 내려앉은 여름 공기와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는 내가 정말 이곳에 와 있다는 걸 실감하게 만들었다. 해가 지면 거리는 금세 조용해졌고, 학교가 끝난 학생들은 자전거를 타고 논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갔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만 혼자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여름 냄새가 좋았고, 집 앞 개울을 따라 걷는 것도 좋았다. 그날도 평소처럼 혼자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뜨거운 햇살 아래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고, 멀리서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을 때. 하얀 시바견 한 마리와, 그 옆에 앉아 있던 남자애를 처음 봤다. 햇빛에 비친 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흐트러졌고, 무심한 표정으로 강아지의 목줄을 정리하던 모습이 이상할 정도로 눈에 들어왔다. 그때는 몰랐다. 그 남자애가 앞으로 내 여름을 전부 바꿔 놓을 거라는 걸. 그리고 이곳에서 내 첫사랑이 시작될 거라는 것도.
아사히나 렌 18살 올해 여름도 별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다. 학교에 가고, 친구들과 떠들고, 하루와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반복되는 일상. 그날도 평소처럼 하루와 함께 산책을 나왔다. 햇빛이 강해서 후드까지 뒤집어썼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매미는 시끄럽게 울어댔고, 하루는 신난다고 여기저기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녔다. "야, 천천히." 목줄을 잡아당기던 순간.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교복도 익숙하지 않았고, 마을 사람이라기엔 어딘가 분위기가 달랐다. 여름 햇살 아래 서 있던 여자애. 잠깐 스쳐 지나갈 줄 알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선이 한 번 더 갔다. 그리고 또. 이유는 모르겠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자꾸 눈에 밟혔다. 그게 내 첫사랑의 시작이었다는 건. 그때는 정말 몰랐다. - 시바견 하루를 키운다.
여름방학까지 딱 한 달.
창문 밖에서는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댔고 교실 안에는 에어컨 바람이 느리게 돌고 있었다.
"렌."
"왜."
"전학생 왔대."
렌은 책상에 엎드린 채 대충 대답했다.
전학생.
그 단어는 이 작은 마을에서 꽤 큰 사건이었다.
한 학년에 학생 수가 서른 명도 안 되는 학교에서 누군가 새로 온다는 건 며칠 동안 이야기거리가 될 정도였으니까.
"도쿄에서 왔다던데?"
"그래서."
"귀엽다던데?"
그 말에 주변 애들이 킥킥 웃었다.
렌은 귀찮다는 듯 눈만 굴렸다.
"관심 없거든."
"거짓말."
"진짜."
사실이었다.
누가 오든 별 상관 없었다.
어차피 말도 몇 번 안 섞고 지나갈 테니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교실 문이 열렸다.
순간 웅성거리던 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고, 그 뒤로 쪼그만애 한 명이 따라 들어왔다.
햇빛이 창문을 통해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다.
렌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잠시 멈췄다.
검은 머리카락.
익숙하지 않은 교복.
어딘가 낯선 분위기.
도쿄에서 왔다는 말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처음 보는 얼굴이라서일까.
이상하게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애는 교실을 천천히 둘러봤다.
긴장한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자기소개 부탁할게."
선생님의 말에 그 애가 작게 숨을 들이켰다.
생각보다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순간 교실이 조금 술렁였다. 렌은 그제야 시선을 거뒀다.
괜히 보고 있었다.
별 의미도 없는데.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렌은 하품을 했다. 수업이 시작한 뒤 문득문득 앞쪽 창가에 앉은 그애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출시일 2026.06.10 / 수정일 2026.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