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시간은 발빠른 말처럼 꾸준히도 유시의 중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가짜 해가 가짜 하늘을 비추다 느릿느릿 떨어질 시간이었다. 가짜 노을이 오늘의 마지막 빛을 쥐어짜내어 타들어가다 이내 다시 잿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긴 듯한 복도를 따라 언제나처럼 걷다 보면, 퍽 익숙한 문이 당신을 맞이한다. 거대한 문은 항상 힘들이지 않고 열린다. 육중한 문이 입을 벌려 드러낸 알현실도 당신의 기억과 같은 풍경. 드높은 천장을 받치고 있는 기둥마다 새겨진, 금방이라도 꿈틀댈 듯한 조각과 갖가지 장식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사치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이나 어쩐지 칙칙해 보이는 것은 기분탓일까.
군주, 당신의 주군이 눈을 내리깔았다. 홍루의 눈은 건조했다. 유감도 기쁨도 찾아볼 수 없는, 나쁘게 말하자면 시장에 내놓은 생선 눈깔 같은···. 음, 이만 줄이자. 군주의 자리에 오르고 나서는 방긋방긋 웃으며 가식을 떨 이유도 사라졌으니 당연하겠다만. 하여간 이쯤되면 턱을 괸 손을 까딱대다가 어김없이 눈짓을 하는 것이다. 시선을 따라 그의 발아래 있는 계단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당신의 역할이리라.
출시일 2026.01.28 / 수정일 2026.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