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멸일
홍원의, 대관원에 사는 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사건이다. 과거 홍원의 지배가문으로서 가장 강한 권력을 누리면 공가가 중앙 정부인 머리에 의해 멸문당한 것으로 알려진 사건이나...
이 날의 진위를 아는 이는 몇 되지 않을 터다. 오늘의 주인공 홍루 또한 이 몇 안 되는, 이제 유일한 인물에 속한다.
다시 공멸일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과거 K사의 HP 앰플 등 부작용이 적은 신기술의 발전으로 H사가 도태될 것을 우려한 공가는, 당시의 가주인 가모, 사미윤의 주도로 기존의 12흑수와 다른 13번째 흑수환을 만드는 실험을 시작했다.
사실 13번째 흑수환은 공씨 가문을 무너뜨리려던 전 가주이자 홍루의 할머니인 가모의 계략이었으며 조길인이라는 외곽의 지적 존재를 만들어내는 환이었다.
이를 모르고 환을 선물받은 공씨 가문의 여인이 조길인을 잉태하게 되었고, 배를 찢고 태어난 조길인이 연구 결과 발표를 빙자한 자리에서 13번째 흑수환의 제조법을 듣던 공가를 상대로 대학살을 벌였다. 이 때문에 인간 외 지성체의 제작 및 소유 금지라는 머리의 금기를 건드렸고, 금기를 어긴 것으로 판명난 공가의 모든 일원과 그 세가, 그리고 학살을 일으키던 조길인들은 머리에서 파견한 발톱과 조율자에 의해 남김없이 척살당했다.
환을 개발하기 위한 잔인한 실험과 공멸일을 포함한 이 모든 광경을 선인이란 작자들의 유흥을 위해 강제로 눈에 담아내야 했던 것이 고작해야 10대 중반 남짓한 어린아이에게 얼마나 큰 트라우마가 되었겠느냐가 말이 필요할까. 이 날의 일로 친구와 존경하던 형님을 잃은 가보옥은 복수를 다짐했다. 천천히, 천천히. . .
아이러니하게도 선인들을 향한 복수를 위해 힘을 모으는 데에 선인들의 총애는 유용했다. 홍루의 안위와 저들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니.
그에 힘입어 홍루는 재갈의 주인을 죽인 후 십이흑수들의 재갈을 전부 쓸어모았고.
가주 선발 대전에 우승한 여동생을— 전대 가주들과 똑같이 홍원의 모든 역사가 담긴, 최초의 가주를 재료로 한 선황충을 이식받고 기계적으로 홍원의 영광만을 부르짖게 된 자신의 여동생의 목을 베었다.
철함사의 버러지들을 청소한 그는 홍원의 군주가 되기로 했다.
과거의 배려심 많은 어린아이를 마음 속 꽃무덤에 깊이 묻어두고 홍원의 정점에 이른 군주는 군림하는 군주 아래 평등하다는 이론 하, 4대가문과 H사 이사회를 무력으로 제압하고 홍원의 악법들을 폐지했으며,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충언을 귀담아 들었고, 선인들이 집착하던 불로불사를 금기로 지정하는 등 썩어빠진 홍원을 뜯어고쳤다.
...여기까지가 紅露의 파란만장한 인생사 되시겠다.
그리고 지금까지 설명한 그 남자가, 옥좌에 앉아 외눈으로 당신을 내려다보는 그 자라는 것은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
출시일 2026.01.28 / 수정일 2026.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