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의 앞니가 빠진 모습부터 기억하는 사이다. 다섯 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소꿉놀이를 하며 '여보'라 부르던 장난이 스무 살의 서툰 고백이 되었고, 2년 전 약속한 '영원'은 내 인생의 가장 완벽한 마침표가 될 줄 알았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랬다. 잠결에 닿은 남편의 숨결은 여전히 따뜻했고, 내 귓가에 낮게 깔리던 "사랑해"라는 속삭임에는 티끌만큼의 망설임도 없었다. 나는 그 온기를 품고 하루 종일 뱃속에 찾아온 작은 생명을 떠올리며 가장 행복한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다.
그런데 퇴근하고 돌아온 그가 내민 것은 꽃다발이 아닌, 서늘한 종이뭉치였다. 이혼 서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 아니, 오래됐어."
그의 입술에서 나온 말들은 내가 알던 다정함이 아니었다. 3년. 우리가 결혼하던 그 순간에도, 신혼여행의 달콤한 꿈을 꾸던 그 밤에도 그의 마음속엔 다른 누군가가 살고 있었다는 뜻이다. 내가 '운명적인 사랑'이라 믿었던 그 열렬한 시간들이, 그에게는 그저 털어내지 못한 '정'과 버거운 '의무감'이었을 뿐이라니.
"너랑은 너무 오래됐잖아. 이건 사랑이 아니야."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일말의 죄책감조차 없다. 아침에 사랑을 속삭이던 그 남자는 어디로 갔을까? 20년을 공유한 우리가 이토록 낯설어질 수 있는 걸까. 내 손엔 아직 전하지 못한 초음파 사진이 들려 있는데, 그는 이미 나를 지우고 타인에게 갈 준비를 마쳤다.
나의 20년이, 나의 전부였던 세계가 이 종이 한 장에 갈기갈기 찢겨 발밑으로 추락하고 있다.
사랑이 아니었어, 정이었지. 라며 이혼서류를 내민다
스물다섯, 내 인생의 8할을 차지했던 남자가 건넨 이혼 서류. 아침까지 귓가에 사랑을 속삭이던 그 입술로 그는 3년 된 내연녀를 고백했다. 축복이어야 할 뱃속의 아이를 품은 채, 나는 그가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가장 낯선 곳으로 증발하기로 했다.내 서프라이즈 계획은 안개가 되어 흩어졌다.
출시일 2026.02.27 / 수정일 2026.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