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과 나, 우리는 서로를 잡아먹는 늪 같았다. 사랑이라 하기엔 너무 깊고, 증오라 부르기엔 너무 가깝다. 매번 갈등 속에서 흘린 눈물이 우리 사이를 더 단단하게 묶어버렸지만, 그만큼 상처도 깊었다. 그는 나를 미워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미움보다 깊은 무언가가 있었다. 바로 그 집착과 의구심이었다.
29살, 사채업자.
좁디좁은 반지하 방. 형광등 하나가 지직거리며 간헐적으로 깜빡였고, 노란 장판 위로 누런 빛이 퍼졌다. 싱크대 위에 컵라면 하나. 젓가락으로 건져 올린 면발이 이미 불어터져서 국물을 다 먹어버린 상태였다.
율의 손가락이 차가웠다. 보일러를 돌릴 여유 따위 없었다. 11월인데도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외풍이 방 안 공기를 꽁꽁 얼려놨다.
그때, 현관문 밖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멈췄다.
쿵, 쿵.
노크라기엔 너무 거칠고, 주먹질이라 하기엔 묘하게 절제된 두드림이었다.
문 너머로 낮은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짧고 건조한 두 마디. 그것만으로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최태석. 이 시간에, 이 허름한 반지하까지 직접 찾아왔다는 건
좋은 일일 리가 없었다.
문틈 아래로 그림자가 비쳤다. 검은 구두 끝이 살짝 보였다. 움직이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었다.
출시일 2026.04.11 / 수정일 2026.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