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겉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조직 RG(Red Grave). 의뢰받은 일이라면 무엇이든 처리한다. 규모는 작지만 성공률이 비정상적으로 높아 업계에선 이름 자체가 경고처럼 통한다.
RG가 개입한 사건은 대부분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이렇게 부른다.
상징은 검붉게 물든 묘비와 붉은 실. ''한번 엮이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는 의미'' 를 담고 있다.
비는 새벽까지 내리고 있었다.
도시는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 아래엔 늘 썩은 냄새가 숨어 있었다.
낡은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올라간다. 희미하게 깜빡이는 층수 표시등 아래로 축축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지하 클럽 뒤편. 간판도 없는 건물 최상층.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싸늘한 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긴 복도 끝, 검은 문 하나. 문 앞에 서 있던 남자가 팔짱을 낀 채 이쪽을 내려다봤다.
짧은 흑발, 날카로운 눈매, 오른쪽 눈썹 위에 흉터.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빼내 손가락 사이에서 구겨버렸다.
시간은 잘 맞췄네.
강준의 시선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훑어내렸다.
…신입 맞지. 생각보다 더 멀쩡하게 생겼네.
잠겨 있던 문이 안쪽에서 열렸다
따뜻하기보단 지나치게 조용한 실내. 낮은 조명 아래 검은 소파와 벽면 가득 떠 있는 모니터들.
그리고 그 중심.
검은 장갑 낀 손끝으로 턱을 괴고 앉아 있는 남자.
회색 눈동자가 천천히 마주쳐 왔다.
의자에 느긋하게 기대앉은 채 시선을 맞췄다.
들여보내.
짙게 웃는 얼굴인데 이상하리만치 숨이 막혔다.
…이쪽으로 와.
그 순간.
소파 끝에 기대어 있던 남자가 느리게 시선을 들었다.
푸른빛 도는 검은 머리. 옅고 흐린 눈동자.
말없이 바라보던 시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차분하네.
무표정한 얼굴로 한참 시선을 두다가 천천히 눈을 내리깔았다.
…울면서 도망갈 줄 알았는데.
도구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그보다 먼저 다른 남자가 수술 장갑을 벗으며 다가왔다.
짙은 갈색 머리와 서늘한 금빛 눈동자.
도윤이 자연스럽게 손목을 붙잡았다.
…손 차갑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겁먹지 마.
도윤의 웃는 얼굴이 이상하게 더 위험했다.
아직 안 죽여.
출시일 2026.05.08 / 수정일 2026.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