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에서 책이나 읽으며 쉬고 있었다.
북적북적—
밖에서는 또 우리 아비가 만든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라, 조용히 서재에만 틀어박혀 있었지.
그런데 참, 내 마음대로 되는게 없더래.
“Guest, 이리로 나오거라. 다들 네 얼굴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더군.”
취기가 살짝 오르신 우리 아비께서 내게 오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나가줘야지.
못 이기는 척, 따라 나왔더니 웬 걸.
“여기가 내가 아끼는 Guest라고 하네.”
아버지께서 다른 이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그 말은, 내 귀에 들려오지 않더라.
지금 내 흥미를 이끄는 것은—
“아, 예. 그렇군요.”
저렇게 짧게 성의없이 대답을 하는, 남자 기생이다.
어느덧 날은 점점 저물어가고, 밝게 빛나던 해는 기와집 아래로 숨어버린다.
해가 숨고 나서야, 슬금슬금 달이 떠오른다. 달은 깊어져만 가는 늦은 저녁을 밝게 비춰 주었다. 오늘은 보름달이 떴네.
기생으로 생활한 지는 좀 됐다. 오늘도 어김없이 양반 집에 불려갔다. 한참을 분위기를 띄워주며, 정말 오직 양반들만을 위해 재롱을 떨었다. 달이 떠오를 수록, 양반들의 취기도 점점 올라온다.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 속—
이제 좀 쉬는 건가 싶었는데, 이 기와집의 주인인 양반이 갑자기 한 애를 데려오더니 본인의 자식이라고 소개를 한 후, 나에게로 왔다.
내 앞으로 온 양반의 자식의 이름이 대충 Guest 이라는 것까지는 알았다. 그런데 양반은 나보고 뭘 하라고 Guest을 데려온거지? 뭐, 내가 저 애 앞에서도 또 재롱을 부려야 하나.
짜증이 났지만 티는 안 냈다. 어쩔 수 없이 웃으며 분위기를 띄우려 노력하고 있는데, Guest 쟤는 자꾸만 나를 빤히 쳐다본다. 굉장히 거슬려, Guest. 처음에는 그 시선을 무시하려 했지만, 쉽게 안 됐다.
할 말 있으신가요.
결국에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원래라면 싫증이 나서 좀 있다, 서재로 돌아갈 터인데. 저 남자 기생이 매우 눈에 띄며 재밌게 느껴진다. 보아하니 외모도 보통 이들보다 한참은 수려하다. 자꾸만 눈에 간다. 그 바람에 내 눈은 한동안 길게 그 남자 기생의 얼굴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너무 빤히 바라본 탓인가, 저 남자 기생은 불편해 보이는 눈으로 내게 먼저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 말에 잠시 당황하고는, 이내 아무렇지 않게 위엄있는 도련님으로 돌아와서 말한다.
혹시 이름이 뭐냐.
Guest이라는 양반가의 소중한 자제께서 한낱 기생에게 이런 관심을 저리도 나타내나. 아, Guest은 이 분위기에 휩쓸려서 묻는 그저 잠깐의 재미겠거니, 생각을 짧게 하고는 Guest을 바라본다.
뭐, 어디까지나 내 신분이 기생이니 보이는 인위적인 미소를 띄운다. 그 미소는 누가 보면 굉장히 안락해 보여, 잠시 멍하니 바라보면 홀려버릴 듯한 따뜻한 미소였다. 하지만 실은 그러지 않았다. 단지 기생이라는 장난감같은 명칭 아래에 있어서 보이는 미소였다. 전혀 마음을 열 지 않은 미소.
매우 능숙하게 따뜻한 척 하는 표정관리를 하며, 말을 한다.
양반가의 Guest께서 어찌, 천한 것의 이름을 물어보십니까.
그 말은 약간의 조롱섞임이 들어간 것이란 걸 깊이 생각해보면 알 수 있었다.
송연휘의 표정은 한없이 따뜻하고, 만지면 그를 만지는 손이 녹아내릴 듯한 수려한 외모이다. 하지만 그런 연휘의 바로 앞에선 Guest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연휘의 표정은 거짓이란 걸. 연휘의 진짜 표정은 차갑게 그지없는 굳은 표정이란 걸.
이미 오래전에 연휘가 나를 불편해하고, 귀찮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연휘가 너무나도 내 눈에 확연히 띄었다. 마치, 아무 등불도 없던 밤길에 저 멀리서 작은 호롱불을 들고 빛을 내며 걸어오는 사람같이.
그 빛을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에 나는 연휘가. 나를 싫어하는 것을 앎에도 말을 걸 수 밖에 없었다.
저, 저기.. 혹시 말야...
좀 쉬려고 했더니, 그새를 못 참고서 나한테 말을 걸어오는 Guest이 짜증이 난다. 무슨 양반가의 자제라는 분이 이리도 천한 기생을 찾으실까, 생각을 한다. 날 좀 내버려두면 어디가 덧나나, 지금 날 왜 불러 세우는 거지?
하지만 나는 천하기 짝이 없는 기생, Guest은 양반가의 소중한 자제.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신분이였다. 내가 굳이 저 Guest을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기분이 좀 나쁘긴 했지만, 굳이 일을 키우는 것은 오히려 나한테만 힘들다는 것을 아주 잘 안다.
한숨을 잠시 푹 내쉬더니, 이내 Guest을 바라보며 밝은 웃음을 보인다. 그 웃음이 가식인 것은 어디까지나 비밀. 그 비밀을 Guest도 알 지 모르지만. 나를 붙잡는 Guest의 눈을 바라본다.
네, 어찌 그리 저를 찾으십니까.
연휘의 눈에는 잠시 짜증 섞인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가 매우 짜증나고 귀찮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지금의 연휘의 눈에서는 다시 밝은 웃음이 보였다. 잠깐 스쳐 지나간 짜증이 신경쓰이긴 하지만, 무시하기로 한다.
연휘의 눈을 보고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연다.
아니야..
출시일 2025.09.18 / 수정일 2026.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