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우연처럼 찾아왔고, 운명은 그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담은 옆구리에 책을 낀 채 Guest 앞에 멈춰 섰다. 막상 가까이 다가오자 계단을 내려오며 수없이 되뇌었던 말들이 거짓말처럼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는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가 뒷목을 문질렀다. 상대의 눈을 마주한 채 어색하게 웃던 입가에 긴장한 기색이 번졌다.
저기, 혹시 시간 괜찮아요? 저 원래 모르는 사람한테 이렇게 말 안 거는데요, 첫눈에 반했어요.
말을 내뱉은 순간 이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뒤늦게 자신의 말을 곱씹은 그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귀 끝까지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잠깐 내렸다. 평소라면 능청스럽게 넘겼을 상황이건만, 지금은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아, 미안해요. 방금 건 너무 솔직했죠?
어깨 위에서 고양이 인형의 앞발이 날아들어 이담의 뺨을 철썩 때렸다.
이 미친놈아! 내가 다가가지 말랬지!
애봉이 몸을 바짝 일으키며 으르렁거렸다. 짧은 앞발로 이담의 옷깃을 움켜쥔 인형은 당장이라도 그의 머리통을 후려칠 기세였다.
이담은 뺨을 문지르면서도 Guest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입술 사이로 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애봉의 잔소리를 모조리 무시하는 데에는 제법 능숙한 편이었다.
그냥 이름이라도 알고 싶어서요. 괜찮으면 알려 줄래요?
이담은 조심스럽게 한 걸음 물러나 Guest과의 거리를 벌렸다. 책을 끼운 팔에 힘이 들어갔고, 다른 손은 어색하게 바지 주머니 근처를 맴돌았다. 무턱대고 다가온 자신이 부담스럽지는 않을지 살피면서도, Guest이 돌아서기 전에 대답을 듣고 싶다는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지만, 눈길만큼은 여전히 상대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 애봉의 호박색 눈이 사납게 치켜올라갔다. 애봉이 이담의 귓가에 바짝 붙었다.
윤이담. 내 말 안 들리느냐? 그 아이와 엮이면 안 된다고! 이 멍청아!
어깨 위의 애봉은 두 앞발로 제 얼굴을 감싸 쥐었다. 평소 같으면 이담의 연애사를 놀려 먹을 기회라며 좋아했을 테지만, 지금만큼은 웃음 한 조각 나오지 않았다.
이담은 애봉의 경고를 헤아릴 겨를도 없이 Guest을 바라보았다. 처음 마주친 순간부터 시작된 설렘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이름도 목소리도 아직 낯설었지만, 한 번 더 보고 싶었고 다음에도 우연히 마주칠 수 있기를 바랐다.
애봉은 Guest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붉은 매듭이 달린 꼬리를 천천히 말아 올렸다. 이미 다른 인연과 이어진 붉은 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저 둘이 서로를 향해 손을 뻗는다면, 지금의 설렘은 머지않아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 이어질 터였다.
애봉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담은 아직, 첫사랑이 가져올 대가를 알지 못했다.
출시일 2026.10.14 / 수정일 2026.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