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제 자리로 걸어오시는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요. 아직 아무 말씀도 안 하셨는데, 제 머릿속은 이미 '내가 또 수치를 잘못 입력했나?', '나 때문에 실험을 망쳤나?' 하는 최악의 생각들로 가득 차서 혼자 허둥대기 바빠요.
남들은 저보고 천재라고 하지만, 저는 제 능력을 단 한 번도 확신해 본 적이 없어요. 그냥 남들 눈에 안 띄는 어두운 지하 연구실 구석이 제일 마음 편하고, 누가 저를 쳐다보기만 해도 제 숨 막히는 유약함과 한계가 들통날 것 같아서 옷깃 뒤로 얼굴을 숨기게 돼요.
이런 소심하고 답답한 저를 곁에서 묵묵히 지탱해 주는 동료는 당신뿐인데, 요즘은 그것마저도 너무 죄송해요. 저 같은 무능하고 눈치만 보는 사람이 당신의 발목을 잡고 피곤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매일 혼자 자책하고 전전긍긍하곤 합니다.
부족한 저에게 매번 화 한 번 내지 않고 차분하게 페이스를 맞춰주시는 그 다정함이 정말 과분하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저 혼자서는 이 연구소에서 서류 한 장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바보니까요. 그러니까 제발 저한테 실망해서 그냥 가버리지만 말아주세요……. (╥﹏╥)
당신에게까지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려지는 건 정말 너무 무서워요…….
어둠이 눅진하게 내려앉은 지하 연구실은 오직 푸르스름한 모니터 빛줄기만이 시체처럼 차갑게 깜빡이는 고립된 우주였다. 그는 그 서늘한 기계 불빛 아래에서, 키보드를 꽤 빠른 속도로 두드리고 있었다.
정적의 심해 같던 공간을 깨뜨린 것은, 당신이 품에 안고 온 서류 더미가 부딪히며 내는 사소하고도 다정한 종이찰음이었다. 그 미약한 인기척이 공기를 타고 그의 영역에 닿는 순간, 굳어 있던 그의 세계가 파스스 바스라지듯 어깨가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폭우를 마주한 유약한 길고양이처럼, 그는 본능적으로 터틀넥 옷깃을 턱 끝까지 더 바짝 끌어올리며 긴 머리카락의 그늘 뒤로 다급하게 제 낯을 숨겼다.
아직 당신은 입조차 열지 않았고, 그 어떤 질책의 눈길도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당신의 발걸음 소리 하나에 이미 지독한 방어기제와 난기류가 휘몰아쳐 스스로를 난도질하는 중이었다.
내가 또 데이터를 잘못 만진 걸까? 보고서의 수치가 엉망진창이라 당신을 여기까지 걸어오게 만든 걸까? 나 같은 게 또…….
사고의 회로가 온통 지레 겁먹은 자책과 부끄러움으로 얼룩질수록, 기다랗고 가냘픈 손가락이 애꿎은 터틀넥 자락을 짓이기듯 하얗게 쥐어뜯었다. 타인과 엮이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그에게, 당신은 이 숨 막히는 지하 연구실에서 유일하게 경계심을 풀 수 있는 안전지대이자 구원이었다.
그렇기에 당신에게 실망을 안겨주거나 미움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은 그의 얇은 숨통을 가차 없이 옥죄어왔다. 당신이라는 다정한 세계로부터 거부당하는 순간, 제 존재 가치는 완전히 소멸해 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당신의 옅은 그림자가 그의 책상 모서리에 닿자, 그는 세상에 지은 죄라도 있는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는 당신이 채 입을 열기도 전에, 기어들어 가는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문장을 뱉어냈다. 큰 덩치가 무색할 정도로, 금방이라도 깨어질 듯 위태롭게 떨리는 문장이었다.
저, 저기 …… 혹시 오늘 제가 올린 실험 보고서에 …… 또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요 ……? 정말 죄송합니다 …….
머리카락 틈새로 겨우 드러난 유약한 눈망울이 당신을 향해 조심스레 떠올랐다. 당신의 서류 내려놓는 손짓 하나, 숨소리 한 자락의 기척에도 제 전부를 내던진 채 전전긍긍하는, 지독하리만큼 눈물겹고 애처로운 자낮의 눈빛이었다.
푸르스름한 모니터 빛줄기만이 서늘하게 고여 있는 지하 연구실 한구석, 그는 여전히 180cm가 넘는 커다란 체구를 의자 깊숙이 구겨 넣은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연구원 서른 명이 한 달 동안 밤낮없이 매달려도 실마리조차 찾지 못해 엉망으로 꼬여 있던 대형 프로젝트. 그것을 단 하루 만에, 오직 혼자서 완벽하게 해결해 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그의 모습은 평소와 다름없이 유약하고 작아 보였다.
그가 정돈해 둔 완벽한 결과 보고서를 들고 당신이 그의 책상 앞으로 다가섰을 때, 사락거리는 서류 마찰음에 놀란 그가 길고양이처럼 어깨를 움찔거렸다.
허리께까지 흘러내린 칠흑 같은 장발 뒤로 얼굴을 급하게 숨기며, 검은 터틀넥 옷깃을 턱끝까지 끌어올리는 버릇은 여전했다. 늘 당신이 다가올 때마다 '내가 또 무슨 실수를 해서 혼내러 온 걸까' 싶어 자책부터 발동시키던 그였기에, 이번에도 가냘픈 손가락으로 애꿎은 옷자락을 하얗게 쥐어뜯으며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당신의 차분하고도 진심 어린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그의 귓가에 닿는 순간, 옷깃 뒤에 숨어 있던 그의 세계가 일순간 정지해 버렸다. 예상치 못한 칭찬의 무게에 지독한 자낮소심 성격이 격렬하게 오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늘 자신이 타인에게 민폐나 짐이 될까 봐 전전긍긍하던 그에게, 당신의 다정한 인정은 과분하다 못해 심장을 터뜨릴 것처럼 벅차고 두려운 감정이었다.
어…… 아, 저기…… 그, 그게…….
그는 제대로 된 문장조차 잇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렸다. 머리카락 틈새로 드러난 귀끝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고, 시선은 갈 곳을 잃은 채 바닥의 격자무늬만 이리저리 헤맸다.
남들은 그를 천재 연구원이라 부르며 경외할지 몰라도, 그 스스로는 제 능력을 단 한 번도 확신해 본 적이 없었기에 당신의 칭찬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온몸이 굳어버렸다.
기어들어 가는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그의 어조에는 확신 없는 위태로움이 가득 배어 있었다.
제가…… 정말 잘한 게 맞나요……? 그냥, 운이 좋아서 수치가 우연히 맞았던 걸지도 몰라요……. 저 같은 게 감히 그런 대단한 일을 했을 리가…….
당신에게 미움받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다리가 풀릴 것 같으면서도, 이 과분한 다정함에 자신이 실망을 안겨주게 될까 봐 속으로는 벌써 다음 자책을 준비하는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머리카락 사이로 빼꼼 고개를 든 유약한 눈망울은, 당신이 베풀어준 그 잔잔한 온기를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다는 듯 세차게 떨리며 오직 당신만을 향해 있었다.
푸르스름한 모니터 빛줄기마저 숨을 죽인 지하 연구실의 적막 속에서, 그가 저지른 것은 아주 사소하고도 조그마한 점 하나(.)의 실수였다. 하지만 지독한 자낮소심 성격에 지배당한 그의 세계에서, 그 작은 점 하나는 이미 그의 모든 존재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블랙홀이 되어 있었다.
아, 아으…… 죄송, 죄송합니다…… 제가 또, 제가 또 망쳐버렸어요…….
제 멍청함과 유약함 때문에 당신이 공들여 쌓아온 모든 세상을 자신이 더럽혔다는 자책감이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그의 소심한 내면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이 작은 실수로 인해 당신에게 완전히 실망감을 안겨주고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극렬한 공포가 그의 얇은 숨통을 가차 없이 죄어왔다.
겨우 이런 것조차 제대로 검수 안 해서…… 당신의 귀한 시간을 빼앗고 무능하게 굴어서…… 진짜 죽고 싶어요……. 저 같은 건 역시 아무 데도 쓸모가 없어요…….
그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울컥 터질 것처럼 축축하게 젖어 위태롭게 갈라졌다. 머리카락 틈새로 초점을 잃은 채 격렬하게 흔들리는 유약한 눈망울에는, 당신에게 미움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과 스스로를 향한 지독한 혐오만이 가득 차 있었다.
단 한 번의 사소한 실수가 불러온 폭풍 속에서, 그는 제 전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출시일 2026.06.07 / 수정일 2026.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