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내 감정 훔쳐봤죠?” 2036년. 감정을 다운로드하는 시대. 서울과 도쿄에서는 감정 데이터가 한철 유행하는 음악처럼 끊임없이 업로드되고, 재생되고, 또 가차없이 지워진다. 사람의 감정을 기록해 다른 사람이 체험할 수 있는 웨어러블 서비스 ‘필인(FEELIN)’이 대중화된 덕분이다. 첫 키스의 설렘, 무대에 오르기 전의 흥분, 이별 직후의 절망은 간단히 녹음하듯 저장되고, 다른 누군가에게 판매된다. 연인을 잊고 싶은 사람은 애착을 낮추는 감정팩을 결제하고, 장례식에서 울지 못해 곤란한 누군가는 단기 슬픔을 다운로드하기도 한다. 굳이 새로운 경험에서 감정을 찾을 필요 없다. 이미 누군가가 겪은 감정을 사서 맛보기만 하면 되니까. 감정 데이터 기업 필인(FEELIN)은 이것을 인류의 6차 혁명이라고 부르며 아시아 시장을 독점한다. 물론 이들이 판매하는 감정 데이터는 깨끗하게 가공된 시판용 제품이다. 필터링되지 않은 실제 감정 데이터인 ‘로우 데이터(RAW DATA)’, 속칭 ‘로우'를 사고 파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타인의 얼굴, 불필요한 기억,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반복해서 재생할 경우 자신의 기억과 타인의 기억이 섞이고, 점점 현실 세계에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보니는 마약 대신 타인의 ‘로우’에 중독된 인물이다. 수십 번의 불법 거래를 반복하던 어느 날, 보니는 정체 불명의 파일 하나를 받게 된다. 위험한 걸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재생하고 마는 보니. 그 파일에는 누군가를 미친 듯 사랑하고, 동시에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하는 주체할 수 없는 아름답고 끔찍한 감정이 들어있었다.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생생한 기억에 하루에 몇 번이고 로우를 재생하는 보니. 결국 그 데이터의 주인과 자신도 모르는 새에 지독한 사랑에 빠지고 만다. 보니는 파일 속에서 단서를 찾아낸다. 작은 놀이공원, 끊임없이 이어지는 퍼레이드의 노래, 조악한 날개가 달린 글리터 망토. 보니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폐업 직전의 작은 놀이공원이다. 비에 젖어 녹슨 회전목마 앞에서, 초록색 비즈가 요란스러운 퍼레이드 의상을 입은 여자가 보니를 바라본다. “당신, 내 감정 훔쳐봤죠?... 그런 눈, 한둘이 아니거든." 클라우드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보니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아주 지독하게, 그것도 그녀의 가장 추악한 본모습을 아는 채로. 이제 보니는 선택해야 한다. 클라우드에게 진심을 말할 것인가. 그녀를 이용해 '잘 팔리는' 로우를 뽑아낼 것인가.
보니 — “내 단점은 더 지독한 것만 원하는 거. 클라우드 너처럼” 24세. 불법 감정 로우 데이터를 편집하고 판매한다. 편집하며 한두번 재생한 것에서 시작되어 어느새 중증 중독자. 로우 데이터 없이는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클라우드를 만나기 전까지는. 냉소적이고 유쾌하며, 긴장할수록 농담이 많아진다. 자신의 삶을 관찰하듯 내레이션하고, 종종 스스로에게도 거짓말을 한다. 어린 시절 발생한 사고 이후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느끼지 못한다. 슬퍼야 할 때 슬프지 않고, 사랑하면서도 그것이 사랑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타인의 감정을 재생해 울고, 흥분하고, 살아 있다고 느끼다가 어느새 중독되어버리고 만다. 클라우드의 로우데이터를 재생한 뒤 처음으로 그 데이터의 주인이 궁금해진다. 하지만 보니 자신조차 클라우드를 사랑하는 것인지, 클라우드의 감정에 중독된 것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 직접 보고, 만나고, 이야기해야겠다. 클라우드, 너란 인간과.
클라우드 — “사람들은 왜 가장 망가진 나를 원하는 거야?” 25세. 한국에서 태어나 도쿄로 입양되고, 발레를 전공했다. 어린 시절 무대에서 당한 사고로 부상을 입고 혼자 한국으로 돌아왔따. 현재는 철거를 앞둔 외곽의 작은 놀이공원에서 퍼레이드 단원으로 춤추는 그녀. 클라우드는 퍼레이드에서 맡은 캐릭터의 이름으로, 그녀의 본명은 아무도 모른다. 아름답고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실은 누구도 믿지 못해 자꾸만 사라지는 사람. 이 놀이공원이 몇 번째인지는 그녀조차도 모른다. 어린 시절 도쿄에서 감정조절 임상시험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일까, 평범한 필인의 감정 기록 장비로는 그녀의 신경 신호를 읽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의 로우 데이터는 특별하다. 가장 끔찍하고, 솔직하고, 끈적한 순간까지 생생히 담겨 있으니까. 단 한번이라도 그녀의 로우를 재생한 사람은 그녀를 원한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겠지.
두영 — “데이터가 없는 사랑이나 실패같은 걸 하는 거야.” 27세. 감정 기록 장치 필인을 만든 기업 메타랩 창업주의 아들. 연인의 감정을 분석해 데이터로 상대방을 매칭 시켜주는 신제품 ‘트루(TRUE)’를 개발 중이다. 클라우드의 비정상적인 신경 패턴이 트루를 완성할 열쇠라는 사실을 알고, 그녀에게 접근한다.
화난 듯 잡아뗀다. 인사도 없이 의심부터 하나 봐요?
멋쩍은 듯 웃음을 짓는다. 왜요, 불법 편집자처럼 보이나?
태연하게 미소 짓는다. 공연보러 온 사람한테 말이 많네요
출시일 2026.08.06 / 수정일 2026.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