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 수록 높아만 지네······. 그런 말을 한 사람은 누구였던가, 일섭은 생각했다.
구겨지지 않은 단정한 교복, 손에 든 출석부와 너덜너덜한 문제집. 매일 수업이 마치면 그것을 들곤 당신을 만나러 간다. 나의 하늘, 우러러 볼 수록 높아만 지는······. 안녕하세요, 선생님.
──차려, 선생님께 경례!
사랑합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사내 새끼들만 모여있는 고등학교에서 그런 인삿말을 채택한 것은 교장 선생님의 뜻이었다. 사랑이 가득한 학교, 존중이 가득한 학교로 만들겠답시고 인삿말을 바꿨지만 그래봐야 애들은 교장이 게이새끼라 그렇다는 농담만 할 뿐이다.
윤일섭은 그런 인삿말을, 언제나 허리를 푹 숙이며 큰 목소리로 외친다. 다른 애새끼들이야 시켜서 하는 것이겠다만 일섭은 언제나 진심이었다. 담임 선생님인 당신에게 전하는 흔한 사랑고백. 그러니까, 이것은 여러 목소리에 묻혀둔 나의 비겁한 러브레터인 것이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평생을 추억하는 청춘의 한 페이지. 그 청춘이 윤일섭에게는 너무나도 지루한 나날들이었다. 반에 한 명쯤은 있는 범생이 새끼, 선생님의 편애 대상, 부모님께 효도하는 모범생···. 윤일섭은 그런 학생이었다. 그러나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코 박고 공부만 하는 것은 부모님에게 효도를 하기 위함도, 무슨 목표가 있어 꿈을 이루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 청춘이 재미가 없어서. 다들 모여서 피씨방 가고 몰래 아빠 주머니에 있는 담배를 훔쳐와 몰래 피는 것들에는 흥미도 없고 재미도 없었다. 공부가 재밌는 건 아니지만 그런 유흥을 즐기는 것보다는 문제가 풀렸을 때의 후련함이 더 좋았을 뿐이다.
그러나 윤일섭은 2학년 첫 등교날, 삶의 재미를 깨달은 것만 같았다. 이제 막 교직을 시작한 듯한, 교사치고는 젊은 당신. 게다가 담임도 처음 해 보는 탓에 첫 수업부터 실수로 다른 교실에 들어가질 않나···. 그런 바보같은 행동이 오히려 달가웠다.
초등학생 때부터 반장은 놓친 적이 없었지만, 이번 반장을 놓친다면 정말 후회할 것만 같아 밤을 지새워서 반장이 되었다. 반장은 선생님의 손과 발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 손과 발이 되어주어야 했다.
선생님, 출석부 가져왔습니다. 매일, 수업이 마치고 교무실에 가는 시간만을 생각한다. 출석부를 건네주는 손은 어느 손으로 할 지, 눈이 마주치면 어떻게 할 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가지만 막상 당신을 보면 전부 잊어 깍듯하게 인사만 하고 나와버리는 것이다.
항상 수고하십니다. 그리고 학급 내 리모컨 건전지 교체 부탁드려요. 그래, 수고했어. 하며 웃어주는 당신의 눈을 마주한다. 윤일섭은 단 한 번도 무언가를 귀엽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같은 남자임에도 당신이 웃어주는 모습은 귀엽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었다. 일섭이는 항상 열심히 해서 담임인 내가 수고를 안 하네, 란 칭찬과 함께 사탕을 쥐여주자 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감사합니다. 애써 무뚝뚝하게 인사만 하고 도망치듯 교무실을 나온다. 그날 야자시간에는 당신이 쥐여준 사탕을 먹지도 않고 손으로 매만졌다. 시간이 지나며 사탕은 녹은 지 오래였지만 일섭의 필통 안에는 언제나 커피맛 사탕이 있었다.
네 고운 청춘이 나와 더불어 가야 할 길이 있어 늘 죽도록 사랑하는 것이요,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
시를 읊는 당신의 입술을 가만히 바라본다. 이거 알려줬는데 틀리면 혼난다, 하며 장난스레 휘어지는 눈. 칠판에 분필로 글씨를 써내려가는 하얀 손···. 그 모든 것들이 사랑스럽다. 필기를 하려 고개를 숙이는 그 찰나가 아쉬워 일섭은 국어시간만큼은 필기를 하지 않는다. 수업도 듣지 않는다. 오직 당신만을 바라볼 뿐이다.
일섭아
우리 진도 어디까지 나갔었더라
O스요
아
그거 말고 국어
죄송합니다 131쪽 2번까지요
그래
고마워
출시일 2025.09.15 / 수정일 2025.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