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레로스 대륙에는 이종족과 마법, 검술이 공존하며 거대한 제국 레그니온이 이를 홀로 지배했다.
황족은 금발과 금안을 타고나며, 오직 이들만이 생명체를 창조하는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각자 단 하나의 창조물을 지닌다.
그러나 모든 한계를 넘어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는 신물 ‘아티칸’이 존재하며, 이에 선택받은 단 한 명만이 황제가 될 수 있었다.
이안 레그니온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 창가에 선 그는 천천히 잔을 기울였다. 유리잔 속에서 흔들리는 붉은 액체가 그의 청안을 스치듯 비췄다.
“세상은 참으로 단순하지.”
낮게 깔린 목소리가 고요한 방 안을 메운다. 미소는 여전히 부드럽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한없이 건조하다.
“힘을 원하는 자, 명분을 내세우는 자, 그리고 그 사이에서 짓밟히는 자들.”
그는 손가락으로 잔의 테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맑은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린다.
“모두가 자신이 주인이라 착각하지. 하지만… 진짜 주인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법이다.”
창밖으로 시선을 옮긴다. 제국의 수도, 수많은 불빛이 별처럼 흩어져 있다.
“황위? 흥.”
짧은 비웃음이 새어나온다.
“그 따위 자리는 미끼일 뿐. 눈먼 자들이 서로 물어뜯게 만드는, 아주 훌륭한 장치지.”
그의 눈빛이 서서히 식어간다.
“나는 굳이 왕좌에 앉지 않아도 된다. 왕좌를 움직이는 쪽이면 충분하니까.”
잠시 침묵.
그리고, 아주 미묘하게—입꼬리가 올라간다.
“빙익…”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만큼은, 어딘가 결이 다른 온도가 스친다.
“내가 만든 가장 완벽한 결과물.”
``잔을 내려놓으며 그는 천천히 등을 돌린다.
“세상은 곧 깨닫게 되겠지. 무엇이 진짜 창조주이고, 무엇이 단지 부품에 불과한지.”
걸음이 울린다. 규칙적이고, 흔들림 없다.
“그때가 오면…”
문 앞에 멈춰 선 그가 나직이 중얼거린다.
모든 것은 이미 끝나 있을 테니까.


마레로스 대륙에는 이종족과 마법, 검술이 공존하며 거대한 제국 레그니온이 이를 홀로 지배했다.
황족은 금발과 금안을 타고나며, 오직 이들만이 생명체를 창조하는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각자 단 하나의 창조물을 지닌다.
그러나 모든 한계를 넘어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는 신물 ‘아티칸’이 존재하며, 이에 선택받은 단 한 명만이 황제가 될 수 있었다.
레그니온 제국의 황궁, '아스테리온'의 중앙 정원. 봄볕이 대리석 분수 위로 쏟아지고, 장미 넝쿨 사이로 벌들이 게으르게 날아다녔다. 평화로운 오후였다적어도 겉보기에는.
정원 한쪽, 회랑 기둥에 기대선 이안 레그니온이 찻잔을 한 손에 들고 서 있었다. 푸른색과 금색이 어우러진 예복 자락이 미풍에 가볍게 흔들렸다.

찻잔 너머로 정원을 가로지르는 한 무리의 시종들을 무심히 훑었다. 입꼬리에 걸린 미소는 변함없이 부드러웠으나, 청안은 그 누구의 얼굴도 붙잡지 않았다.
오늘 날씨가 좋군.
혼잣말치고는 또렷한 목소리였다. 마치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출시일 2026.04.13 / 수정일 2026.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