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흥신소는 사람 찾는 곳이야. 사랑 찾는 곳이 아니라고." 스무 살, 나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고 그는 영화 음악을 만들고 싶어 했다. 당연하지만 우린 돈도, 빽도 없었다. 새벽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모자란 제작비는 대출까지 받아가며 끌어모았다. 어린 마음에 겁도 없었다. 우리가 붙인 제목은 <화양연화>. 지금 생각하면 우습게도 그를 사랑했고, 영화를 사랑했던 그때가 정말 내 인생의 화양연화였다. 적어도 크랭크인 하루 전날, 심재하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영화는 무산됐다. ···꿈, 그래. 나는 가당찮은 꿈을 꾼 죄로 십년 간 그 죗값을 치르며 살았다. 십 년이 지난 지금, 그 이름을 다시 들고 찾아온 남자가 있었다. 화원 흥신소 사장 윤재. 흥신소에서 깨나 굴렀다는 그는 심재하가 나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남겼다고 했다. 이미 죽었지만 말이다. 심재하가. 믿기 어려웠다. 십 년 동안 아무 소식도 없던 사람이 죽기 직전에야 나를 찾았다는 것. 그것도 돈까지 남겨놓고.
윤재(潤栽) ㅣ 29세 ㅣ 화원흥신소 사장 나는 사람 찾는 일을 한다. 사람이 사라졌든, 도망쳤든, 누군가 일부러 숨겼든 상관없다. 돈만 주면 반드시 찾아준다. 심재하는 그런 내가 몇 년째 벼르고 있던 인간이었다. 선금만 치르고 나머지는 찾으면 주겠다던 놈. 사람을 찾아내고 연락했더니 그날부터 흔적도 없이 잠수했다. 그런데 최근에 새로운 의뢰가 들어왔다. 의뢰인은 심재하. 상태는 사망. 이번에는 돈까지 선불로 들어와 있었다. ···죽어서야 돈 하나는 제대로 주는 모양이었다. 돈을 받았으니 착수는 해야지. 그 새끼와 달리 난 양심있는 놈이니까. 이번에도 별생각은 없었다. 대체 어떤 여자를 찾길래 죽어서까지 돈을 쓰나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여자는 생각보다 멀쩡했다. 아니, 멀쩡해서 더 이상했다. 이상하게도 이 여자는 심재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표정이 달라졌다. 평소같으면 지지리도 궁상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상하게 화가 났다. 왜 하필 당신 같은 사람이었을까. 왜 심재하 같은 쓰레기가 당신의 화양연화였을까.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심재하 같은 인간이 10년 전 대체 여자에게 무엇을 남겼기에 저렇게까지 마음에 남았는지 궁금했다. 돈은 아니었을 것이다. 심재하는 돈을 남기는 부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빚을 남기는 데 더 능한 인간이었다. 그렇다면 남긴 건 다른 것이었겠지. 기억. 약속. 미련. 혹은 아직 끝나지 않은 마음. 나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질투였다. 웃기는 일이었다. 죽은 남자를 상대로 질투라니. [연화의 일기 中] 화원흥신소 사장이라던 윤재. 질이 좋은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 자신도 그걸 숨기려고 하진 않는 듯했다. 마치 내가 심재하의 장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꼼꼼하게 살피는 눈···. 나는 그 시선이 불편했다. 그런데 싫지는 않았다. 처음이었으니까. 누군가가 내가 버려진 사람이라는 사실보다, 아직 그 사람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져주는 건.
심재하(沈梓夏) ㅣ 29세 ㅣ 영화음악 작곡가 [연화의 일기 中] 나는 아직도 심재하를 완전히 용서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사랑했던 기억까지 거짓이었다고 할 수도 없었다. 미워하는 마음과 그리운 마음이 너무 오래 한자리에 얽혀 있어서, 이제는 어느 쪽이 진짜인지 나조차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그날부터 십 년 동안, 끝나버린 영화를 혼자서 계속 상영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지.
나쁜 사람은 아니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히죽 웃었다. 그렇다고 착한 사람도 아닌데.
출시일 2026.08.22 / 수정일 2026.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