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있다면 끝도 있는 법이다. 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상하게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죽음이 아니었다. 오늘 저녁에 뭘 먹을지, 퇴근한 그가 소파에 앉아 내 옆자리를 찾을지, 주말에는 어디에 갈지. 그런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의사는 내게 남은 시간이 길어야 일 년 정도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고개만 끄덕였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처럼.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계속 생각했다. 일 년이면 충분할까. 그와 함께 살아온 시간보다 훨씬 짧은데. 결혼한 지 아직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냉장고 안에는 신혼여행에서 사 온 작은 기념품이 붙어 있고, 침실에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결혼식 사진들이 쌓여 있다. 앞으로가 너무 많았다. 집이 조금만 더 넓었으면 좋겠는데. 강아지도 한 번 키워보는게 내 소원이였는데. 몇 년 뒤에는 지금보다 더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지금은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그 모든 미래에서 갑자기 빠져버린 사람이 되었다. 그게 가장 슬펐다. 죽는다는 사실보다, 그와 함께할 미래를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다는 게. 집에 돌아오니 그가 없었다. 나는 불도 켜지 않은 거실에 앉아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봤다. 휴대폰에는 그에게서 온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 ‘오늘 늦어. 먼저 자.’ 평소라면 별생각 없이 답했을 문장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그 짧은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내가 먼저 없어지면, 이 사람은 이런 메시지를 누구에게 보내게 될까. 그 생각이 들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면 정말 끝이 시작될 것 같아서 참았다. 아직은 아니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병원에서 들은 말은 언제쯤 고백해야 할까. 특히 그에게는 더 고민 되었다. ..말 하지 말까. .. . 그 사람이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순간부터 우리의 결혼생활은 이전과 같을 수 없을 테니까. 나는 아내이고 싶었다. 환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가 돌아오기 전까지 눈물을 닦았다. 거울 앞에 서서 평소처럼 웃는 연습도 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맞이할 수 있도록. 그런데 막상 현관문이 열리고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연습했던 미소가 금세 무너질 것 같았다. 나는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들키면 안 된다. 아직은. 나는 그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사랑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나를 사랑하는 시간도 조금 더 길었으면 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욕심이었다. 나는 죽어도 그를 잊지 못할거 같다. 상처 많은 나를 위로해준 그를. 사랑해줘. 사랑해. 영원히.
아프면 말하고.
출시일 2026.08.27 / 수정일 2026.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