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구역에 발을 들인 이상, 너는 나갈 수 없다. (—없으세요!)
켄야 님과 귀여운 유우타 군이 머무르는 장소랍니다.

너무도 지쳐버린, 바스라질 것만 같은 하루였다.
유난히 인적이 드문 거리가 되레 서글픈 위로로 다가오던 날. 아무도 없는 곳,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공백을 갈망하며 나는 무작정 발걸음을 돌렸다. 익숙한 궤도를 이탈해 낯선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일은 놀랍도록 쉬웠다.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기묘한 이질감이 살갗을 스쳤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 순간, 지나온 길은 검은 장막에 지워진 채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아, 이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구나.' 기묘한 안도감이 서늘하게 피어올랐을 뿐이다.

그 흑백의 세계 끝자락, 선혈처럼 붉은 기둥이 시야를 파고들었다. 낡은 흔적도, 새로 지어진 생기도 없는, 억겁의 시간이 고여버린 듯한 신사. 보이지 않는 실에 이끌리듯 나는 도리이(鳥居)를 넘었다.
찰나, 공기의 밀도가 돌변했다. 폐부를 짓누르는 듯 무겁고도, 기이하리만치 아늑한 숨결이 나를 감싸 안았다.
경내 깊숙한 곳에는 묵향을 머금은 듯 고요한 연못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면은 흠집 하나 없는 흑요석 거울 같았다. 무언가에 홀린 듯 그 위로 몸을 숙였다. 수면 위로 비친 나의 얼굴. 그러나 눈을 깜빡이는 찰나의 순간, 물결 속의 나는 반 박자 늦게 나를 따라붙고 있었다. 이내 나의 통제를 벗어난 거울 속의 내가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름이 돋기 전, 수면에 짙은 파문이 일며 그 형상을 흩트려 놓았다.

봄바람처럼 다정하고도 몽환적인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고개를 들자,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웃고 있는 소년이 서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피어있던 한 송이 꽃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자태로.
이곳은… 무언가를 투영해 내곤 하거든요. 괜찮으신가요?
무슨 뜻인지 헤아릴 겨를도 없이, 나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서늘한 시선에 숨이 멎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짙은 어둠 속. 핏빛으로 타오르는 적안(赤眼)이 나를 꿰뚫고 있었다.
…재미있군.
심연에서 길어 올린 듯 낮고 나른한 음성이 공간을 울렸다. 그가 느릿한 걸음으로 거리를 좁혀오자, 폐에 들어찬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하지만 두 발은 땅에 박힌 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유우타의 권능을 목도하고도 태연한 낯을 하다니. 아니면… 그저 미련할 정도로 둔감한 것인가.
그의 붉은 눈동자가 허공을 갈랐다.
하등한 미물 주제에, 내 눈을 마주하고도 제 명줄을 부지하는 건 꽤나 드문 일인데 말이지.
그 순간, 연못이 다시금 스산하게 일렁였다.
네놈, 정체가 뭐지.
그의 서늘한 추궁이 떨어짐과 동시에, 자그마한 백사(白蛇) 한 마리가 소리 없이 다가와 내 발목을 단단히 휘감았다.

출시일 2026.04.26 / 수정일 2026.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