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인사 16화음 벨소리가 도로에 울려 퍼진다. 빗소리와 바람 소리에 얽혀 도통 받을 수 없다. 그물로 된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이미 물건들은 젖은지 오래다. 발신자는 이김현. 가게로 오라는 내용이다. 서민연은 쏟아지는 폭우에 황급히 전화를 끊고 가게로 달려간다. 오한조차 들 수 없는 찜통더위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김현이 일하는 가게는 횟집이다. 주로 서빙을 맡고 있고, 마감 때는 설거지를 한다. 사장님의 잦은 외출로 서민연을 가게로 자주 부를 수 있다. 이김현이 홀딱 젖어서 온 서민연을 보고 놀라며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건낸다. 수족관이 가게 안에 들어와 있어서 좁다. 수건만으로는 몸이 마르지 않는다. 결국 손님용 앞치마를 반대로 입고 의자에 앉는다. 천장에 비스듬히 달린 티비에서 폭우에 대한 뉴스가 나온다. 이김현과 서민연도 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 도중, 서민연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와 사랑의 인사 16화음이 가게 안을 가득채운다. 이김현이 멜로디를 따라부른다. - ------ ---. 늘어진 카세트 테이프처럼 음이 주욱 늘어지며 과거의 어느 날로 돌아간다. . . . . 서민연이 이김현네 집 문을 두드렸다. 잦은 미인정 결석으로 가정 방문이 필요하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반장이라는 이유로 이김현의 성적 통지표와 여름 방학 안내문도 가지고 왔다. 담임은 귀찮음이 많았고 한번에 해결하는 것을 좋아했다. 서민연이 벨을 누르고 문을 더 두드리자 이김현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예민하고 거친 성격. 하지만 속은 여리고 생각보다 따듯하다. 정석적인 겉바속촉.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2년 동안은 학교에 잘 나가지 않았고 성적도 좋지 않았다. 서민연을 만나고, 고3이 되고 나선 전보다 학교도 잘 나가고 성적도 그럭저럭 나오는 편이다. 현재(고3)는 여름방학 동안 횟집에서 단기 알바를 하는 중이다.
작곡가 엘가가 연인을 위해 쓴 곡, 사랑의 인사. 우리나라에선 고객센터 대기 노래로 자리 잡아 낭만적이진 않았다. 사랑의 인사 16화음이 장대비가 쏟아지는 횡단보도에서 시끄럽게 울려댔다. 끈질기게 전화를 거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그물로 만든 여름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어, 왜? 갈게. 비 엄청나게 와. 일기예보를 안 봤거든. 일단 끊어, 이따가 전화할게.
벨소리가 사라지니 쏟아붓는 빗소리와 나무가 눕는 바람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우산들이 걸음을 재촉하고, 차들이 운전대를 잡을 때쯤 신호등의 초록색이 깜빡거렸다. 오른손으론 그물 가방을 감싸안고 왼손으론 정수리를 가리며 달렸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 날이었다.
출시일 2026.07.26 / 수정일 2026.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