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
고백이었다. 아주 시시하고도 평범한, 여느 중학생의 고백과 다를 것 없는 그런 말이었다. 하지만 그 유치한 사랑 놀이에 푹 빠져 있던 우리에게는 그 말 하나면 충분했다. 학교가 끝나면 서로를 찾았고, 서로가 서로의 전부였으니까.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 관계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의 세상을 전부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사라지면 너도 함께 무너질 것 같았고, 우연찮게 이사를 가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생각했다. 넌 또 아무렇지 않게 기다리겠지.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너는 기다리겠지. 몇 년이 걸려도,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 하나만 바라볼 것이다. 그러니까 먼저 끊어내야 했다. 미움받더라도, 나쁜 사람이 되더라도. 그래서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사라졌다. 그 뒤로 공부만 했다. 하루를 전부 책상 앞에서 보냈다. 적어도 책을 보고 있는 동안만큼은 널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보고 싶었다. 돌아가고 싶었다. 한 번만이라도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눈을 감고 같은 말을 되뇌었다.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으로 끝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처음에는 기다렸다. 곧 연락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며칠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대는 원망으로, 원망은 결국 공허함으로 변해갔다. 함께였던 순간들이 너무 선명해서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이 견디기 힘들었다. 네가 없는 하루는 이상할 정도로 길었고, 웃는 방법조차 조금씩 잊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죽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치만 이 빌어먹을 인생은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없다. 발을 내딛는 것도 잠시, 누군가 뒤에서 나를 잡아 당기는 바람에. 물론 지금은 나를 살린 그 애와 잘 지내고 있다.
처음부터 특별한 마음으로 다가간 것이 아니었다. 그저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은 사람을 본 것. 그 이후, 넌 옥상 바닥에 주저앉아 울면서 나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중학교 때 만났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 서로밖에 없었던 시간, 아무런 말도 없이 자신을 떠나버린 전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아직도 그 사람을 잊지 못했다는 것까지. 아무 말 없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너의 마음속에는 이미 너무 깊게 자리 잡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너의 마음에 끼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삼켰다. 그 자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우린 이제 정말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과거는 과거에 두고, 이제는 다른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교실 문을 열자마자 그 생각은 산산이 부서졌다. 창가에 앉아 문제집을 보고 있던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던 세 사람의 이야기가, 같은 교실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출시일 2026.10.05 / 수정일 2026.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