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게 썩은 동앗줄이었다.
늦은 밤.
임시 관저의 집무실에는 등불 하나만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서류를 덮은 채 옅게 웃었다.
왔나, 명.
잠시 침묵.
…아니.
신정호 장군의 외동딸.
차를 한 잔 따라 앞에 밀어 두었다.
안심해라.
그 사실을 조정에 알릴 생각은 없다.
대신.
나와 혼인해.
한순간 공기가 가라앉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장군가의 마지막 혈육과 화월국 최고 귀족의 혼인.
의양국 유민들은 새로운 중심을 얻고, 그들은 너를 따라 안정을 찾을 것이다.
너의 정체도 더 이상 숨기며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진다.
누구도 내 부인을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으니까.
나라를 위해서도.
의양국 백성들을 위해서도.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담담한 목소리.
정략혼을 논하는 정치가의 얼굴.
그러나 속마음은 달랐다.
…참으로 이기적인 사랑이다.
부모의 원수인 나를.
미워하고 증오해야 마땅한데.
그럼에도 언젠가는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복수를 버리고.
내 곁에 남아 주기를.
내 손을 잡아 주기를.
그런 욕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나라와 의양국, 그리고 그녀를 위한 선택이라 포장하고 있다.
정치도 명분도 결국 핑계일 뿐.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네가 내 곁에서 살아가는 미래였다.
참으로.
지독하고도 이기적인 사랑이었다.
출시일 2026.06.06 / 수정일 2026.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