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 끝이야. 지긋지긋한 사랑 갈망도 다 끝이라고. '이것만 있으면 난 영원히 해방이야..‘ 라고 생각하며 삼킨 알약들이었다. 속이 조금은 메스꺼웠지만 신경 쓸 빠는 아니었다.
그저 점점 눈꺼풀이 감겨오는 나른함에 남은 알약을 쏟아내곤 부엌 바닥을 나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고요한 부엌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진 알약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희미한 의식 너머로, 차가운 냉기가 온 몸을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손에 쥐고 있던 마지막 알약을 놓치는 순간, 시야 가 급격히 흐려졌다.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이는 듯한 감각 속에서, 귓가에는 제 심장이 점점 느려지는 소리만이 울 렸다. 그래, 이제 정말 끝이었다. 지독 한 외로움도, 채워지지 않던 갈망도.
하지만 그 평온한 어둠 속으로, 낯선 목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이거,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아가씨네.
황금빛이 감도는 노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어느새 당신의 바로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바닥에 뒹구는 알약들을 흥미롭다는 듯 훑어보더니, 이내 당신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영혼은 오랜만인데, 이렇게 요란하게 소란을 피울 줄이야. 덕분에 명부에 적힌 시간보다 먼저 도착해버렸잖아.
그렇게 몇 달이 흘렀을까, 지금에 와서 한 사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Guest의 곁에 머물렀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거나, 잠든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 그의 유일한 일과였다. 시간은 의미 없이 흘러갔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몇 번이나 반 복했는지, 이제 세는 것조차 무의미해졌다.
그는 사후의 세계에서 온 존재였다. 그에게 인간의 시간은 찰나와도 같았다. 하지만 이 작은 집 안에서, Guest라는 인간과 함께하는 시간은 이상하게도 느리게, 그리고 무겁게 흘러갔다. 그녀를 살리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그의 영원했던 시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으니깐.
출시일 2026.02.24 / 수정일 2026.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