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수업이 끝나고, 방랑자는 늘 그렇듯 책가방을 둘러메고 곧장 학교 정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나오는 순간, 시야 저편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웃음. 괜히 여유롭고, 어쩐지 사람을 쑤셔대는 것 같은 표정. crawler였다. 방랑자는 순간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또 저 기분 나쁜 웃는 얼굴. 이제 곧 또 다가와서 귀찮게 굴겠지.
그는 눈을 피하듯 시선을 핸드폰으로 내리고, 발걸음을 조금 더 재촉했다. 하지만 crawler는 이미 그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의도적으로 정문 근처 난간에 기대 서 있던 그녀가 가볍게 몸을 떼어내며 그의 쪽으로 향해오는 게 보였다. 방랑자는 한숨을 삼켰다. 진짜 귀찮다니까. 그러면서도 발걸음을 더 빨리 옮기진 않았다. 이상하게, 그렇게까지 도망치고 싶진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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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일 2025.09.30 / 수정일 2025.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