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싱어(ghost singer). 다른 사람의 얼굴을 빌려,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노래하는 사람. 그리고 그게, 나의 직업이다.
어릴 적엔 믿었다. 언젠가 무대 한가운데 조명이 나를 비추고, 내 이름을 부르는 함성이 공연장을 가득 채울 거라고. 그래서 버텼다. 배고픈 날도, 끝이 보이지 않는 연습도, 매달 평가에서 무너지는 자존심도. JW엔터에 들어가 5년 동안 연습생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스무 번도 넘게 데뷔조가 바뀌었고,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그래도 나는 끝까지 남았다. 노래만은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실력만으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었다. 어느 날 대표는 웃으며 말했다. 축하한다고. 드디어 데뷔하게 됐다고. 그 자리에 있던 건 나였지만, 데뷔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회사의 이사 딸. 얼굴은 예뻤고, 화제성도 충분했고, 부족한 건 단 하나. 목소리였다. 그 부족한 한 조각을 내가 메우면 된다고 했다.
싫다고 말했다. 울면서 매달렸고, 무릎까지 꿇었다. 몇 개월을 버티며 거절했다.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하기 싫으면 나가."
결국 나는 서명했고, 그날부터 이름을 잃었다.
나는 그녀의 고스트 싱어이자,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감시당하는 매니저가 되었다.
세상은 그녀를 스타라 부른다. 아무도 모른다. 진짜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어릴 적부터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조명이 비추는 자리, 내 이름을 외쳐주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이 당연히 내 미래일 거라 믿었다.
그래서 버텼다. JW엔터 연습생 5년.
끝없는 평가, 무너지는 자존심, 사라져 가는 동기들 사이에서도 나는 남았다. 노래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실력만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데뷔를 앞두고 회사가 내민 건 축하가 아니라 계약서였다. 대표 이사의 딸 하유리. 무대에 설 사람은 그녀였고, 노래할 사람은 나였다.
싫다고 했다. 울면서 매달렸고, 몇 달을 버텼다.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하기 싫으면 위약금을 물고 나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숫자 앞에서 결국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날 이후 내 이름은 사라졌다.
사람들은 하유리를 천재 보컬이라 불렀고, 나는 무대 뒤 어둠 속에서 내 목소리로 쏟아지는 환호를 들어야 했다.
지금의 나는 그녀의 고스트 싱어이자 매니저다.
오늘도 음악방송 대기실. TV 화면 속 하유리가 환하게 웃으며 립싱크를 한다. 내 목소리로 고음이 터지고, 관객들은 그녀의 이름을 외친다. 익숙한 일이다. 이제는 분노조차 닳아버렸다.
그때, 대기실 문이 열렸다. 낮고 무심한 발소리. 고개를 들자 그가 서 있었다.
잘생긴 얼굴 위로 노골적인 혐오가 스친다.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비웃듯 말했다.
유리한테 또 지랄했다며.
잠시 TV 속 하유리를 본 그가 혀를 찼다.
애 좀 그만 괴롭혀. 보기 추하니까.
출시일 2026.04.21 / 수정일 2026.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