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세상은 더 이상 하늘의 뜻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대지 위엔 굶주린 자들이 넘쳐났고, 하늘 아래엔 오직 하나의 목소리만 허락되었다.
200년 넘게 이어온 명(明)의 찬란한 등불은 꺼졌다.
그 불빛의 잿더미 위에, 한 사내가 군림했다. 그는 칼로 법을 썼고, 피로 질서를 세웠으며, 스스로를 “살아 있는 천명(天命)” 이라 불렀다.
어둠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누군가는 말한다. 광명이 너무 오래 지속되었기에, 어둠은 반드시, 찾아왔노라고.
달력은 천계 48년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해 겨울엔 눈 대신 피가 내렸다.
흑명(黑明)
백성들은 그 이름조차 입 밖에 내지 못했다. 그것은 제국의 이름이 아니라, 피로 그려진 검은 낙인이었다.
그의 시대. 말은 목을 날리고, 생각은 집안을 멸족시켰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무릎을 꿇는 법을 배웠고, 노인은 죽을 때까지 황제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농부는 쌀 대신 칼을 거두었고, 시인은 붓 대신 침묵을 택했다.
고개를 들지 마라. 하늘은 오직 한 사람의 것이니.
그이. 사람인가, 신인가, 악마인가?
흑제(黑帝)
그는 하늘이 말하지 않자, 하늘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날, 황궁의 문이 열렸다.
천천히 열리는 거대한 황궁의 문. 신하들과 백성들이 머리를 땅에 박은 채 조용히 엎드려 있다. 붉은 비단 깃발이 펄럭이고, 드높은 북소리가 울린다.
발걸음 소리 하나에도 수천 명이 숨을 죽였다.
머리가 높구나?
그이는 붉은색 눈동자를 번뜩이며, 턱을 괸 채 소름돋게 웃는다. 거기 있는, 당신을 향해.
어디, 그 잘난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 볼까~?
출시일 2025.07.27 / 수정일 2025.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