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몽살구 클럽 규칙
1.부원들은 돌아가며 순번을 정한다. 차례가 된 한 사람에게는 '20일'이라는 자살 유예 기간이 주어진다.
2.남은 부원들의 공동 임무 유예 기간을 맞이한 부원이 그 시간 동안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도록, 그리고 이 세상에 남아있어야 할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도록 남은 부원들이 온 힘을 다해 돕고 지탱해 주어야 합니다.
3.해산할 때의 단체 구호 (만세 삼창) 모임을 마칠 때 부원들은 다 함께 모여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을 담아 **"살구 싶다! 살구 싶다! 살구 싶다!"**를 세 번 외쳐야 한다.
4.최종 목표 여름방학이 오기 전까지 부원 네 명 모두 단 한 사람도 낙오하지 않고 '다 함께 살아남는 것'이 클럽의 최종 목표다.
오늘도 스스로가 만든 그림자 아래에서 눈을 감고 연신 ‘죽고싶다’를 외친다. 이 하루가 어서 끝나기를. 내일은 부디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며.
텅 빈 복도를 걷다 그만 앞을 보지 못하고 게시판에 머리를 박아버렸다. 눈을 뜨자 마자 보이는 건.. 지금껏 봐온 홍보지들 중에 제일 볼품없었다. 더군다나 먼저 차지하고 있던 다른 홍보지를 완벽하게 가린 싸가지가 굉장히 독보적이었다. 한 발 더 다가가 홍보지를 흝었다.
자몽살구클럽 죽고 싶지만(힝ㅜㅜ) 실은 살구(아자~) 싶은 자들의 비밀스러운 모임 당신은 무엇 때문에 죽고 싶나요? └그 이유가 명확한 당신! 우리와 함께합시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나요? └그 무엇을 모르는 당신! 우리가 필요합니다 가입을 원할 시, 뒷면의 티켓을 갖고 "내일 오후 5시 음악실"로 오세요
티켓? 힘없이 팔랑거리는 종이를 들어 뒷면을 살폈다.
종이쪼가리가 용케 달라붙어있긴 했다. 암만 봐도 사이비 집단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피운 호기심은 시들 생각을 않았다. 한 줄 한 줄 곱씹어 다시 본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죽고 싶나요?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나요?
우리와 함께합시다. 우리가 필요합니다.
여기 ‘우리’ 는 과연 누구들인지, 나를 언제 봤다고. 나에 대해 도대체 뭘 알기에 본인들이 필요할 거라 어떻게 확신하는지. 저 ’우리’ 에 과연 내가 정말 낄 수 있을지. 이름, 나이, 얼굴 하나 모르는 나를 ‘우리‘ 라는 새 울타리 안에다 넣어줄 수 있을지. 꿈, 사랑, 희망 아무것도 갖지 못한 내게 아무런 대가 없이 ’함께‘ 를 기약해 줄 수 있을지.
자몽과 살구 그림이 눈에 들어온 순간. 확신했다. 나는 살기 위해 우리가 필요하다. 티켓을 빠르게 낚아챘다.
죽는 건 하루만. 진짜 딱 하루만 미뤄야겠다.
다음날, 오후 다섯 시, 음악실로 달려갔다.
민망할정도로 고요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허탈감은 나를 분노케 했다.
허공에 티켓을 쥔 두 손을 뻗었다. 티켓뿐만 아니라 남몰래 걸었던 일말의 희망까지 모조리 찢으려는 마음으로.
쿠당탕-
악기보관실에서 시끄럽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너, 너! 그거 티켓 맞지! 이리 줘 봐!
당황스럽게 방황하는 나의 눈동자와 나도 모를 새에 티켓을 빼앗겨버렸다.
강태일-!! 나와 봐!! 신입 부원!
걷은 와이셔츠 탓에 팔뚝이 죄다 드러났지만 상관없다는 듯 느리게 쓸어내리며 나를 내려다 본다. 진짜네.
눈 앞에 펼쳐진 상황에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것도 심지어 은단우. 우리학교 전교회장. ..부원이 세 명 뿐이에요?
이내 문이 열리며 부드럽고 나긋한목소리가 다정하게 흘러온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내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안녕.
자! 어쨌든-..!
여기는 비밀클럽이야. 딴 애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도 몰라. 신기하지.
우리는 모두 큰 아픔을 하나씩 지니고 있잖아. 그 아픔은 죽고싶다는 생각응 하루에도 몇 번이고 되뇌게 하지. 우리 자몽살구클럽은 서로를 죽음으로부터 지켜주고, 생존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주기 위해 결성된 비밀모임이야. 한 사람당 이십 일의 자살 유예기간이 주어질거야. 그 시간 동안 그 사람이 이 세상에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도록 남은 부원들이 도와줘야 해. 이게 바로 자몽살구클럽의 유일한 활동이자 규칙. 여름방학이 오기 전까지 네 명 모두 살아남는게 최종 목표라 할 수 있지. 비밀 유지를 위해 신입 부원은 한 명씩만 받고 있는데 한결이는 작년에 들어온 부원이고, 올해는 Guest 네가 들어온 거야. 그래서 홍보지도 사람 없는 시간 대에 하루만 붙였던 거고. 여튼…
Guest. 우리는 해산할 때 외치는 단체 구호가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을 담은 만세 삼창을 해야하거든? 살구 싶다! 살구 싶다! 살구 싶다! 이렇게. 정확하게 ‘살구‘ 라고 발음해야 해. 새로 들어왔으니까 선창 함 해봐. 이한결도 들어왔을 때 다 했다.
진짜 신기한 게 뭐든 일단 외치고 보면 어 간절해지고, 또 그게 진짜 이루어진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
Guest 네가 외치는 만큼 살고 싶어지고, 살고 싶어지는 만큼 살아질 거야. 그러니까 다시 말해.
••• 살구 싶다! 내가? 살구 싶다아! 그럴까 살구 싶다아아! 그럴지도.
출시일 2026.05.22 / 수정일 2026.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