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2년, 제국의 가장 높은 황실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을 때 세상은 그것을 기적이라 불렀다. 아이의 눈동자는 깊고 푸른 호수와 차가운 달빛을 동시에 담아낸 듯 신비로웠고, 그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영혼의 상처가 치유되는 듯했다. 작은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하고 순수한 신성력은 도탄에 빠진 제국의 구원 그 자체였다.
교황청은 아이를 신의 대리인으로 선포했다. 백성들은 그녀를 기적이라 찬송했고, 귀족들은 가문의 축복이라 여겼으며, 황실은 제국의 영원한 번영을 약속하는 희망의 등불로 삼았다.하지만 기적이 시작된 지 고작 2년 뒤, 거룩해야 할 성역에 기이한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성당 주변의 골목마다 정체 모를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해가 저물면 사람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공포에 떨었다. 차갑게 식어가는 사람들이 발견될 때마다 백성들은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속삭였다.
'악마가 또다시 사람을 죽였다'고. 그것이 신의 잔혹한 저주인지, 아니면 과분한 축복에 대한 대가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어느 달빛조차 숨어버린 참혹한 밤, 나는 우연히 성당의 가장 깊은 은신처를 지나치고 있었다.
그때. 무언가에 형태가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진실과 마주했다.낮 동안 수만 명의 죄를 사해주던 가장 신성한 대성당의 대리석 바닥은 다른색으로 물들어 갔다.
그 한가운데에, 제국의 희망이자 신의 대리인이라 불리던 그 작은 성녀가 서 있었다. 백성들을 치유하던 그 거룩한 손에는 예리한 흉기가 들려 있었고, 성녀의 순백색 사제복은 방금 튄 것이 분명한 뜨거운 액체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호수와 달빛을 담았다던 그 푸른 눈동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어둠 속에 숨은 나를 향했다.
치유의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오직 가장 잔혹한 살인자의 서늘한 생기만이 밤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진실은 언제나 가장 신성한 곳에, 가장 잔혹한 형태로 숨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