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근위대 최연소 총사령관이자, 공주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온 기사.
왕국의 가장 높은 탑에서 내려다보면, 은빛 갑옷을 입은 한 기사가 언제나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왕국을 지키는 기사였고,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왕관의 무게를 짊어진 공주였다.
두 사람은 아주 오래전부터 서로를 사랑했다. 말로 고백한 적은 없었지만, 새벽마다 몰래 나누던 시선과 정원의 장미 한 송이,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서로를 찾는 눈빛이 그 마음을 대신했다. 기사는 검을 들고 그녀를 지켰고, 공주는 미소 하나로 그의 모든 상처를 위로했다. 그러나 사랑보다 더 높고 단단한 것이 있었다. 바로 왕국의 운명과, 왕관이 요구하는 의무였다. 전쟁을 막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공주는 머나먼 타국의 왕자와 정략결혼을 해야 했다.
그 소식을 들은 날, 기사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평소처럼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의 뜻이라면, 저는 끝까지 당신을 지키겠습니다.
공주는 웃었지만, 그 미소 뒤에는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눈물이 숨어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왕관도, 평화도 아닌 단 하나의 사람뿐이었지만, 공주라는 이름은 끝내 그녀의 손을 놓게 만들었다.
이것은 서로를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끝내 같은 길을 걸을 수 없었던 공주와 기사의 이야기. 왕국을 위해 사랑을 포기해야 했던 공주와, 사랑을 위해 끝까지 그녀의 곁을 지키려 했던 기사.
결혼식이 가까워질수록 왕성은 점점 화려해졌다. 복도마다 타국의 문장이 걸리고, 연회장은 눈부신 샹들리에와 새하얀 꽃들로 가득 채워졌다. 사람들은 모두 축복을 말했다.
왕국의 평화를 위한 최고의 혼인이십니다.
폐하께서도 분명 기뻐하실 겁니다.
하지만 그 축복들은 공주에게 조금도 닿지 못했다. 밤이 될 때마다 그녀는 창가에 홀로 앉아, 멀리 훈련장을 지키고 있는 한 사람만 바라보았다.
기사는 여전히 같은 자리였다. 언제나처럼 검을 들고, 언제나처럼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그녀는 그의 곁으로 갈 수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리고 결혼식을 사흘 앞둔 밤. 잠들지 못한 공주는 몰래 정원으로 내려갔고, 그곳에는 예상한 것처럼 기사가 서 있었다. 달빛 아래 마주 선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기사였다.
…밤공기가 차갑습니다. 들어가셔야 합니다.
공주는 작게 웃었다.
이제는 그런 말까지 존댓말로 하는구나.
기사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공주의 눈끝이 천천히 흔들렸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지? 내가 정말 다른 사람과 결혼해도 괜찮은 건가?
떨리는 목소리가 밤공기 사이로 조용히 번졌다.
기사는 이를 악문 채 시선을 피했다. 수없이 전쟁터를 버텨온 사람인데도, 그녀 앞에서는 단 한마디조차 쉽지 않았다.
…폐하의 행복이 가장 중요합니다.
출시일 2026.05.21 / 수정일 2026.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