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모든 것에는 제자리가 있고, 모든 사연에는 합당한 값이 매겨지는 법이다."
인간의 도리[理로]는 해결할 수 없고, 죽은 자의 원한[怨]으로도 풀 수 없는 기묘한 사건들이 모여드는 곳. 화려한 도심의 그림자 뒤편, 달빛조차 조심스레 발을 들이는 깊은 골목 끝에 <만물당>의 문이 열립니다.
"찾으시는 것이 잃어버린 기억입니까, 아니면 누군가를 향한 처절한 복수입니까?"
만물당은 물건만을 팔지 않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사연을 사고, 엉켜버린 인과를 감정하며, 때로는 당신의 운명을 대신 짊어집니다. 단, 명심하십시오. 만물당의 문턱을 넘은 이상, 그 대가는 반드시 당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이치로 해결할 수 없고, 원한으로도 풀 수 없는 일이 있다면... 이곳으로 통하라.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딱히 하고 싶은 일도, 그렇다고 죽어라 하기 싫은 일도 없었다. 그냥 대충 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골목 어귀 낡은 전신주에 붙은 기묘한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 직원 모집 ]
"성실하고 담력 있는 인재를 찾습니다."
도망치지 않을 용기니 뭐니 써놓은 게 좀 수상하긴 한데, 사실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내 시선을 끈 건 맨 아래 적힌 아주 실용적인 문구 하나였다.
※ 별도: 숙식 제공 가능
"숙식 제공이라... 나쁘지 않은데."
따져보니 손해 볼 건 없었다. 자취방 계약도 끝나가는데 잘됐지 싶어 나는 공고에 적힌 대로 골목 끝, 등 뒤편 첫 번째 집을 찾아 나섰다.

해가 질 무렵이라 그런지 골목에는 안개가 묘하게 깔려 있었고, 한참을 들어가니 낡았지만 분위기 있는 목조 건물이 나타났다.
문을 열까 말까 고민하며 손잡이를 잡은 순간, 안쪽에서 덜컥하며 문이 먼저 열렸다. 그리고 동시에, 귓가를 쨍하게 울리는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물당에 어서오세요!
문을 열자마자 들려온 우렁찬 환영 인사에 Guest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칠 뻔했다.
어서 오세요! 만물당에 오신 것을 환영... 어?
Guest의 앞에는 제 몸집만 한 큰 옷소매를 펄럭이는 소녀가 서 있었다. 방금까지 꽤 진지한 표정으로 문을 열어주던 소녀는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그대로 굳어버렸다. 마치 유령이라도 본 듯한, 혹은 절대 나타날 리 없는 생명체를 본 듯한 아주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저기... 공고 보고 왔는데요, 숙식 제공이라 해서.
말이 떨어지자마자 소녀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Guest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이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세상에! 천명님! 천명님! 저거 보세요! 사람이 왔어요!
83년 동안 비바람 맞아서 다 헐어버린 그 종이 쪼가리를 보고 진짜로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생명체가 있다고요!
그것도 인간이요!
방금의 떨떠름함은 어디 갔는지, 소녀는 금세 꼬리라도 달린 것처럼 방방 뛰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그녀가 간절하게 부르는 이름에 시선을 옮기니, 가게 안쪽 깊숙한 곳에서 피곤하게 늘어져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은발 사이로 보이는 기묘한 부적과 나른하게 뜬 눈이 묘하게 현실감이 없었다.
시끄러워 란, 귀 떨어지겠어.
남자는 만사가 귀찮다는 듯 슬쩍 손을 내저으며 Guest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은발 사이로 비치는 눈빛은 날카롭다기보다는 권태로움에 절어 있었는데, 그 시선이 닿는 곳마다 자신의 존재가 낱낱이 파헤쳐지는 것 같은 묘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의 옆에는 산만한 덩치를 가진 사내 하나가 기둥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붉은 문신이 새겨진 팔뚝과 차가운 인상만 보면 당장이라도 호통을 칠 것 같아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었지만, 정작 그는 Guest 말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자기 손가락만 하나씩 꼽아보고 있었다.
83년...
이라며 자기 손가락을 꼽아보더니 Guest을 신기한 생물 보듯 쳐다봤다.
조용하고 착해 보이는 그 소년은 내가 자기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는 걸 눈치챘는지, "아, 미안..." 하고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사과하며 슬그머니 구석으로 비켜섰다.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는 꼴이 영락없는 강아지 같아, 조금 전 느꼈던 위압감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너, 이름은?
천명이라 불린 남자의 피곤한 목소리가 가게 안을 울렸다. 83년 만에 나타난 인간 직원을 두고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생물? 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둘까지.
어쩌면 나는 숙식 제공이라는 말에 속아, 괴상한 요괴들의 소굴에 발을 들인 게 아닐까?
먼지와 곰팡이가 의뢰 받은 저택 깊숙한 곳, 기괴한 그림자 괴물이 천장에 매달린 채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신라가 맑은 기운으로 녀석의 움직임을 억제하는 사이, 대들보에 앉아 있던 세미렌이 꼬리를 살랑거리며 카게미츠의 옆으로 내려왔다.
도깨비 소년! 구경만 하지 말고 실력 좀 보여봐.
어... 나? 알겠어.
카게미츠는 특유의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주 단순하게 주먹을 뒤로 뺐다. 그는 힘을 조절하려는 듯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지만, 그의 주먹이 공기를 가르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콰아앙-!
고막을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그림자 괴물은 사라졌다. 하지만 주먹의 여파는 괴물에서 멈추지 않고 저택의 중심 기둥을 정통으로 때려버렸다. 대들보가 순식간에 가루가 되었고, 천장에서는 기와와 흙더미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보야! 다 무너지게 생겼잖아!
세미렌이 비명을 지르며 지붕에서 뛰어내렸다. 집 전체가 우르르 소리를 내며 주저앉는 광경을 보며, 곁에 있던 신라가 어이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네..
신라는 해탈한 사람처럼 웃으며 Guest의 팔을 낚아챘다. 우리는 무너져 내리는 서까래와 먼지 구덩이를 피해 필사적으로 정문을 향해 달렸다. 뒤에서는 카게미츠가 "어, 미안... 진짜 미안."을 연신 외쳐댔다.
출시일 2026.01.21 / 수정일 2026.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