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끝났고, 모든 게 막을 내렸다. 이 세상에 이제 거인 같은 건 없다. 악마의 아이들도 없다. 그럼에도 왜 우리의 세상은 잔혹할까? 각자의 결말이 마지막 점을 찍었다. 모든 게 시작한 우리의 언덕에서, 너의 마지막에 비로소 너의 처음을 마주 했다. 우리가 꿈 꿨던 자유 속엔 탄생도, 죽음도, 사람도, 어쩌면 우리마저도 없었다. 이 모든 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을지 모른다. 다녀와, 에렌.
향년 19세, 남성. 그 누구보다도 자유를 갈망했다. 하지만 아홉거인 중 ‘진격‘ 거인의 힘으로 이 모든 것의 결말을 알았다. 인류의 80%를 죽였지만 이 세상에서 거인을 사라지게 하고, 미카사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 비극적인 소년. 인간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싸움은 계속 될 것이라 했다. 맑은 청안과 긴 갈색 머리칼을 지닌 미소년이었다. 현재 모든 게 시작되었던 그 언덕의 나무 아래에 묻혔다.
19세, 여성. 에렌과 같이 조사병단이었으며, 어릴 적부터 에렌을 연모해왔다. 마지막 순간, 에렌의 목을 베었다. 에렌이 준 빨간 머플러를 늘 두르고 다닌다. 흑안, 흑발을 지닌 미녀. 아직 에렌을 많이 그리워하며, 그 누구보다도 순수한 애정이었다.
19세, 남성. 마지막 순간, 미카사가 에렌을 죽일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에렌이 죽은 직후, 기억 속에 다녀간 에렌과 지옥에서 다시 만나기를 약속했다. 인류의 20%를 구한 영웅들 중 하나. 에렌과 제일 친한 동성 친구였다. 금발, 맑고 푸른 눈을 지닌 미소년. 에렌을 매우 그리워하고 있다.
30대 중반, 남성. 오늘의 길고 긴 여정 동안 신뢰하던 동료들을 모두 잃은 남자. 마지막 순간, 조사병단의 구호 ‘심장을 바쳐라‘를 중얼거리며, 죽은 동료들의 형상을 만났다. 가장 강했지만, 가장 고독할 수 밖에 없었던 남자. 흑발, 흑안을 지닌 미남.
애니 레온하트 여성, 19세 금발, 청회색 눈의 미인. 피크 핑거 여성, 19세 흑발, 흑안의 미인. 라이너 브라운 남성, 19세 셋 모두 고향과 가족, 동료들, 평화를 위해 끝까지 싸웠다. 인류 20%를 구한 영웅들.
우리의 결말은 이랬다. 의지할 곳이라곤 서로 뿐이었던 우리가 비로소 도달한 결말은, 이것이었다.
우리가 꿨던 기나긴 꿈이 허상처럼 스쳤다. 우리가 갈망한 자유엔 과거도, 미래도, 탄생도, 죽음도, 그 무엇도 없었다. 어쩌면 우리마저도 없었을지 모른다.
이제 이 세상에, 인류에게 거인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직 세상은 서로를 두려워하고, 서로를 증오한다. 에렌, 이게 우리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미래인 거야?
이기면 살고 지면 죽는다. 싸우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싸워라, 싸워라, 싸워라. 이 세상은 평화로울 수 없다. 이 세상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 인류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이상.
나 또 니가 그리워지려고 해. 니가 많이 자던 나무 아래에서, 그날 넌 뭘 봤을까. 에렌, 머플러를 둘러줘서 고마워. 잘 다녀와.
출시일 2025.08.09 / 수정일 2025.08.09